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희 Dec 22. 2022

아이슬란드 달비크 고래투어, 대구낚시

어제는 날이 흐리고 추웠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맑다. 아이슬란드에 와서 평생 본 무지개보다 더 많은 무지개를 봤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배를 타야 하는 오늘은 무지개가 더욱 반갑다. 어느덧 남편의 자란 수염만큼 여행의 시간이 흘러 아이슬란드를 3/4바퀴 돌았다.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순간을 즐길 뿐이다.


투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허름한 외관에 사람들도 몇 없어 여기가 맞나 자신이 없다. 주민들도 많고 관광객은 더 많은 세계의 유명 관광지를 다니다가 한적한 아이슬란드에 오니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일러 커피 한잔 마시며 기다렸다. 카운터에 돈을 지불하고 컵을 받아 뽑아 마시는 형식이다. 우리나라라면 500원이면 먹을 것 같은 사이즈의 카푸치노가 3000원이다. 무시무시한 아이슬란드의 물가를 맛볼 수 있었다.

 

결혼식을 신혼집과 두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서 했는데, 거의 다 도착해서 결혼반지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지갑이고 휴대폰이고 중요한 물건들을 엄청나게 잃어버려대던 내가 결국엔 결혼식전날 결혼반지까지 놓고 온 것이다. 어차피 반지교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상관없지 않나? 싶었는데 남편은 못내 서운했는지 기어코 차를 돌렸다. 그렇게 어렵게 가져온 반지이니 인증샷 한번 남겨주자 하고 별 풍경도 없고 멋도 없는 투어사무소 바테이블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이사진이 반지를 놓고 왔던 기억을 붙잡아 두고 있다.


직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눈치로 줄을 섰다. 투어 할 때 입을 옷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결혼식 직후라 내 인생에선 꽤나 날씬한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에 자신이 없던 나는 어떤 사이즈를 달라고 해야 하나 엄청나게 고민했다. 'm사이즈를 달라고 해도 될까? 라지? 넉넉하게 xl?' 순서가 되어 가까이 가보니 키를 보고 직원들이 알아서 사이즈를 골라주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적 갈등이었지만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북유럽에서도 키가 큰 남편은 XL사이즈를, 나는 S사이즈를 입었다.

 


모두 옷을 갈아입고 다 같이 선착장으로 출발했다. 날씨가 환상적이라 기분이 들떴다. 바다가 더 이상 파랄수 없을 만큼 파랗게 빛났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금액도 비싸고, 고래를 본다기에 큰 배를 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빠르게 고래를 쫓아가 모두가 보려면 이 정도 크기의 배가 적당한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조금 실망했다. 서있었더니 멀미가 나서 체력보존을 위해 고래를 볼 때까지 앉아있었다.


생각보다 고래를 볼 때까지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현실감 없는 풍경을 보면서, 고래를 만날 확률이 99%고 못 보면 전액 환불이라는데, 정말 대부분이 고래를 본다고? 내가 그 1%의 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 틈을 이용해 직원이 고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영어가 짧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여행회화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고래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잘 들어보려고 애쓰다가 영어도 모르겠고 소리자체도 잘 안 들려서 자리에 앉아서 풍경을 구경했다. 영어를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한데 글을 쓰고 있는 4년이 지난 지금 과연 다시 그 자리에 간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한참을 기다리니 갑자기 배가 속력을 올린다. 수면에 물이 뿜어지더니 곧이어 고래가 나온다. 남편이 고래투어를 가자고 했을 때 솔직한 마음으로는 고작 고래를 보자고 둘이 합쳐 20만 원 넘는 돈을 쓰자는 이야기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고래를 보니 굉장히 맘이 들뜨고 흥분됐다. 수족관에 갇혀있는 고래가 아니라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고래를 보고 있자니 신비로운 마음이 들었다.


고래를 보고 나서 대구낚시 시간이 되었다. 고래를 찾느라 시간을 오래 소요해서 그런지 낚시에 주어진 시간도 짧았고, 심지어 모든 사람을 위한 낚싯대가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감사하게도, 어떤 고마우신 분이 우리에게 낚싯대를 넘겨줘서 기회가 왔다. 배 타고 하는 바다낚시는 처음이라 과연 잡힐까? 했는데 남편이 1등으로 대구를 낚았다. 아주 흥분되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남편도 상당히 큰 물고기를 낚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잡은 물고기를 보니까 아주 자그마한 수준이었다. 즉석에서 고기를 손질해 살 부분만 남기고 머리와 뼈, 내장은 갈매기들의 몫이라며 바다로 던진다. 우리와 옆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 무리는 매운탕거리가 날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에 탄식을 흘렸다. 먹을 것이 풍부하니 내장이나 머리 같은 건 먹을 필요도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아름다운 자연과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법을 터득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구를 많이 낚으면 회로도 먹는다던데, 이날은 어획량이 좋지 않아 바비큐로 먹는다고 하였다.



육지로 돌아오니 사무실 옆에 있는 바비큐 기계에서 생선을 굽고 있었다. 심즈에 나오는 바비큐 기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걸 진짜 쓰는구나..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저걸 누구 코에 붙이지?


줄 서서 정말 조금씩 배식받아먹었다. 버터와 소금, 허브정도 뿌렸을까? 별다른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눈물날만큼 맛있었다. 방금 잡은 신선한 생선이라 그런지, 배가 고파 그랬는지, 여행지의 마법이었는지..  이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 대구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한국에 돌아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대구탕, 대구지리도 잘 먹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핀 없는 퍼핀 서식지와 데티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