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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과 80의 차이

숫자에 휘둘리지 말 것

by 책읽는제이

40과 80의 차이

- 숫자에 휘둘리지 말 것


내 인생은 너무 가까워 웅덩이만 보이고 친구의 삶은 멀리 있어 꽃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웅덩이 옆 잔뜩 피어 있는 들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 것을, 오평선 지음 -


"엄마, 나 어떻게 해?"

학교가 끝난 작은딸에게 전화가 왔다.

"왜 지아야, 무슨 일이야?"

"엄마 나 과학시험 40점 맞았어. 엄마 어떡해?"


세상에 40점이라니, 갑자기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아이를 생각해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괜찮아 지아야. 모르는 건 배우면 되는 거야. 있다가 엄마랑 다시 한번 풀어보자."

기분이 땅속까지 가라앉은 듯한 아이와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100점이 아닌건 괜찮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 초등학생 때는 공부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엉덩이 힘을 기르는 기간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40점이 당황스러운건 어쩔수 없었다.


피아노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슬그머니 시험지를 내밀었다. 빨간색 볼펜으로 40점이라고 크게 쓰여있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니 다시 한번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점수 아래쪽을 보니 '매우 잘함'칸에 체크가 되어있다.

"엄마, 내 친구는 37점 맞았고 또 누구는 35점 맞았어."

남편이 시험지를 뺏어 들어 살펴보더니 하는 말.

"이거 50점 만점이잖아~"


100점으로 환산하면 80점이다. 진짜 40점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물론 아이를 시험 점수로 평가하는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40점은 진짜 좀 그랬다. 50점 만점이란 소리에 갑자기 너그러운 엄마가 되어 그래도 잘했다며 아이를 달랬다.


좀 더 나은숫자를 원해


우리 집값이 얼마나 올랐나 옆동네는 어떤가 네이버 부동산을 기웃거린다. 집값이 오르면 이참에 팔고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맹모삼천지교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더 나은곳으로 이사 가는 것 쯤은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숫자에 금새 실망을 하고 만다. 큰 아이가 곧 6학년이다 보니 중학교 진학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학교에 진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그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려면 세 놓고있는 집까지 모두 팔아도 갈 수 있을까 말까 한다. 집에 껴있는 대출금까지 갚고 나면 어쩌면 모자랄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계산을 하다 보니 지금 집에서 앞으로도 쭉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 집의 값어치가 오르면 다른 곳도 다 오른다. 사실 집값이 오른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원하는 집을 구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유명 학군지의 집값을 검색하다보면 넘기 힘든 언덕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 했다. 전국의 시세를 한 번씩 훑어보고서는 이내 마음에 상심이 차오른다. 맞벌이를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어느새 구인광고까지 뒤적거리고 있다. 여러가지 저울질 끝에 결국에는 '그때 이랬어야 하나 ? 저랬어야 하나?' 갖은 후회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생각해 보면 내 상황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데. 서열을 매기다 보니 나는 많이 모자라고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원하다 보면 현실의 나는 못나보였다. 아이의 시험점수, 남편의 연봉, 내 집의 시세, 나의 몸무게까지도. 모든 숫자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네엄마들끼리 나이를 묻다가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되고는 '나도 어디 가면 늘 막내이던 시절이 있었는데'라며 나이 듦을 부끄러워했다. 좀 더 나은 숫자를 차지하길 원했고 서로의 숫자를 묻기 바빴다. 과연 숫자가 우리의 삶을 제대로 대변해 줄 수 있는걸까?


1등 하는 아이가 무조건 행복하고 넓은 집에 사는 고액연봉자가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친구가 많다고 해서 내 마음을 늘 이해받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 내집을 마련했을 때의 감격스러움을 기억한다. 우리집 주소를 외우면서 뿌듯했던 그날이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뒤로 몇년만에 다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등교길이 내려다 보이는 거실에서 아침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집값으로 표현되지 않는 행복이었다. 봄이면 빨갛고 노란 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내 집은 정원이 따로 필요 없을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곧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온다. 우리 아이들은 둘다 11월 생이라 한달내내 거의 축제기간이다. 이번 생일에는 특별히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도 찍기로 했다. 12살 10살 지금의 아이들 모습을 예쁘게 사진에 담아 남겨두려고 한다. 단순히 '몇'으로 측정할 수 없는 의미들이 우리의 삶 곳곳에 담겨있다. 남과 비교하거나 나를 작게 만드는 숫자가 아닌 나에게 의미있는 숫자를 마음에 새기면서 살고 싶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밤하늘의 별을 따려고 손을 뻗는 사람은 자기 발아래 꽃을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동안 더 나은 숫자를 얻기 위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소중한 가치를 잊은 채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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