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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엄마 나쁜엄마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지 말 것

by 책읽는제이

좋은엄마 나쁜엄마

-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지 말 것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내 행복한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더 현명하게 행복해져야 한다.

- 자발적 방관육아, 최은아 지음 -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하는데 군데군데 찢어진 페이지, 연필로 구멍을 뚫어놓은 흔적. 알 수 없는 낙서들이 가득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당장 눈앞의 성적?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


두 딸과 엄마표 공부를 한 지 6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 교재를 사서 가볍게 시작을 했다. 그러다가 큰 아이가 입학할 무렵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학교도 못 가고 EBS온라인수업을 보면서 엄마표 공부를 계속하게 됐다.

그 시기쯤 '엄마가 학원을 이긴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래, 아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내가 우리 아이에게 딱 맞게 교육을 잘 시켜보자'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곧잘 했고. 선생님의 피드백도 칭찬일색이었다. 자연스럽게 둘째 아이도 엄마표 공부를 시작했고 매일 저녁이면 아이들과 함께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니 점점 더 욕심이 생겼다. 진도를 빨리 나가볼까? 경시대회에 나가게 해 볼까? 영어 레벨테스트도 있다던데 그런 걸 경험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각종 정보들을 검색하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시켜야 할지 고민을 했다.


공부해야 할 양은 점점 늘어났다. 반에서도 당연히 앞서야 했고 맘카페에서 봤던 그 아이보다 나은 성과를 내주길 바랐다. 가끔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답답한 마음에 화도 냈다. '다 그만두고 학원이나 다녀라'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 때면 딸들은 엄마랑 공부 할꺼라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큰 아이는 엄마 말대로 잘 따라왔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자기주장이 강했고 좋고 싫은 게 분명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하는 걸 못 견뎌했고 공부하기 싫다며 반항을 했다. 둘째 아이와의 실랑이가 잦아질 무렵,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하다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거다. 너덜너덜 해진 문제집이 바로 그 증거였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고 모든 공부를 중단했다.


매일 실컷 놀았다. 읽고 싶은 책도 충분히 읽었다. 엄마의 기대라는 부담을 견뎌왔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이 작은 아이들에게 대체 무엇을 원했던 걸까. 건강하게 태어나 준것만으로도 감사하던 때를 까맣게 잊고지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엄마의 욕심이 함께 자랐다.


한 달정도 지났을 즈음 아이는 한자가 배우고 싶다고 했다. 천천히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냈다. 하고싶은 공부를 원하는 만큼 하기 시작하니 아이는 점점 바뀌어갔다. 내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큰 아이었다. 스스로 선택할수 있도록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아이들을 믿었다. 엄마 주도가 아닌 진짜 자기 주도 학습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문제집이 바로 수학이었는데 말이다.


아이의 교육에 집중했던 시간. 아이가 곧 나인 것처럼 아이의 성과에 일희일비했다. 아이가 잘하면 내가 잘하는 것처럼 기뻤고 아이가 힘들면 내가 실패할 것만 같은 불안함에 사로잡혔다.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를 위한 일이었다. 한발 물러서 있어야 하는데 내가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을 했다. 뭐든지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엄마에게 모든 것을 물어보고 지시를 기다리는 아이로 키우고 있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와 나를 동일시한다. 내가 못 이룬 것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거나 어른들이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내주길 바란다. 학원 하나 더 보내고 문제집을 한 권 더 사주면서 혹시 내 자식이 뒤쳐질까 걱정을 하면서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믿고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해한 적은 있을까?


'너에게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라는 책에서는 거울을 보고 얼굴에 뭐가 묻어있으면 거울을 닦는 게 아니라 내 얼굴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만 아무리 고치려 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나 자신에게서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건 딱 하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가 계획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삶. 내가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꿈꾸고 있는 바로 그 삶을 아이가 살아갔으면 한다.


마음이 많이 힘들 때에도 아이들에게는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엄마가 힘들지 않게 내가 엄마말을 잘 들어야겠구나' 생각했을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아이가 아무리 잘해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아이를 내 뜻대로 키우려고 해도 내 마음 같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자기의 인생을 열심히 살다 보면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를 내 자랑거리로 만들려 하지 않고 내가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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