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일기면 어때

내 이야기를 쓸 것

by 책읽는제이

방구석 일기면 어때

- 내 이야기를 쓸 것


쓰고 싶은 혹은 쓸 만한 주제가 머릿속에 쓱 하고 지나갔다면 바로 낚아채서 쓰세요. 그럴싸한 글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빨리 쓰고 보는 거예요. 일단 써놓으면 나중에 뭐든 됩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지음-


「낮에 엄마랑 민서 만나서 점심 먹고 커피 마심. 어제 너무 늦게 자서 그런가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 자꾸 무기력해진다. 집안일도 빠르게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밥도 하기 싫다. 포스팅도 1~2개는 하려고 했는데 만사가 귀찮다. 그러면서 또 쫓기는 기분도 든다. 저녁은 달떡에서 해결해야지. 암튼 큰일이다.. 내일은 무조건 실천! 체크하기.」


2024년 3월 25일에 썼던 실제 일기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 관한 일이나 엄마표 공부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쓰다가 올해 1월부터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 나의 발전에 대해서 쓰기로 맘을 먹었다.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무기력이 올라왔나 보다. 진짜 모든 게 귀찮아 보인다. 집밥에 진심인 편인데 하루에 두 끼를 밖에서 사 먹었다.




다이어리에 중간중간 이런 식으로 끄적여놓은 일기가 꽤 많다. 어떤 날은 아예 한 페이지 가득 우다다다 뱉어내듯 써놓은 글도 있다.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났을 때 딱히 누구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내 감정을 털어놓는 게 목적이었다. 혹시라도 누가 들춰볼까 봐 속 시원하게 쓰지 못한 적도 있지만 지금까지 다들 평온(?)한 걸 보면 걱정했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나서 미운감정이 올라오다가도 실컷 끄적이다 보면 결국 그 안에서 해결이 됐다. 내가 했던 행동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나도 꼭 잘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신기하다. 자기반성이 되는 거다. 작년에 썼던 일기를 보면 뭐라도 해보려고 애쓰던 때가 떠오른다. 돈 많이 버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며 야심 차게 적어놓은 글을 읽으며 '이때는 이랬구나' 하며 남일인 것처럼 짠하게 바라본다. 일기장 주인의 야망 가득한 이야기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물이란 것을 잠시 잊는 순간이었다.


블로그에 내 이야기를 썼던 적이 있다. 아이 둘을 독박육아 했던 일,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던 일, 이사를 하며 동네친구들과 이별했던 일 등등 고백과 같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다. 글을 올리면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들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냈거나 혹은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친한 이웃의 응원이 있었다. 얼마 후 그때 썼던 글을 모두 내렸지만 사람은 누군가의 솔직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의식의 흐름대로 내가 겪은 일들을 나열하듯 써놓으면 일기,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내가 느낀 감정, 맥락,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 있으면 에세이가 된다. 지금껏 나는 일기만 써왔다. 에세이라는 건 읽어는 봤어도 직접 쓰는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에세이를 써보고자 결심을 했다. 서평 쓰기에 이어 두 번째 글쓰기에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건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예 글감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까지도 철없이 살던 여자가 결혼과 육아로 갑자기 어른이 되어 적성에 맞지도 않는 전업주부로 10년을 살아온 이야기, 남편과 불화를 겪을 무렵 코로나가 터지고 집에 고립된 채 우울증에 빠진 이야기, 그리고 그 우울의 늪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렸던 몇 년의 시간은 쓸 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 독서를 통해 새로운 꿈을 찾아 글을 쓰고 있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문장을 쓰던 때가 기억난다. 몇 자 쓰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났다. 육아가 너무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온통 그리운 날들이다. 그 순간을 왜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까. 하얗고 조그만 손가락을 다시 만져보고 싶었다. 밤늦도록 퇴근도 못하고 업무에 시달리며 전전긍긍했을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쓰다 보니 힘듦도 원망도 사라졌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나에게 공감을 해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글쓰기는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라고 한다. 일기장에 불만을 쏟아놓는 것도 그 자체로 위안이고 나의 이야기에 누군가가 공감을 해주는 것도 나를 향한 인정의 말로 느껴진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공감을 못하겠다며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뭐 어떠한가. 내 마음이 치유되었으면 그걸로 됐다.


나의 한 친구는 20년 전부터 가수 박효신의 열렬한 팬이다. 남편이 해외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혼자서 삼 남매를 키우면서도 박효신을 향한 덕질을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는 어린 시절 꿈이 현모양처였지만 지금은 경력 20년의 커리어우먼이자 워킹맘으로 살고있다. 결혼 전까지 비서로 일했던 친구는 결혼 후에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단번에 동차합격을 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 중에 똑같은 인생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실 알고 보면 누구나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라면서 몰입을 한다. 엄청난 사건이나 특별한 이벤트에 공감을 하는 게 아니다. 일상 속에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 자잘한 스토리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나를 내려놓고 오랜 친구처럼, 동네에 친한 엄마처럼, 친정 언니처럼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보자. 일기든 에세이든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시간을 꼭 가져보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에세이도 한편 꼭 써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목차가 있다.


"마음의 찌꺼기를 에세이로 갈아버리자"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찌꺼기를 곱게 갈아서 모두 흘려보냈다.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을 토닥여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