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책리뷰
고명환 작가의 강연을 좋아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진심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고명환 작가는 누구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했던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질문을 독서를 통해서 해결했다.
이 책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가 퇴직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던 일화가 나온다. 전교 1등을 하라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좋은 대학에 가라고 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대기업을 가라고 해서 갔는데 퇴사 후에 다른 일을 하려고 하니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하는 고민이었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지?"
저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같이 술을 마셔주는 것뿐이었다. 그날 이후 어느 책에서 마주한 하나의 문장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우리는 대답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문제다. 질문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중에서
친구가 잘못한 건 없었다. 주어진 일을 하며 살다 보니 인생에 대해 질문할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 저자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에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길던 짧던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조급함을 갖기 시작했을 때다. 서두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고 조급함이 지옥을 만든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원하는 곳까지 가리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려던 것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대답의 세상이 아닌 질문의 세상을 살아야 한다. 대답의 세상은 끌려가는 세상, 질문의 세상은 내가 끌고 가는 세상이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왜 돈을 버는가?
나는 언제 행복한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좋은 질문 하나면 인생이 바뀐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독서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명환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질문 하나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했던 질문은 "나는 왜 돈이 벌고 싶을까?"였다. 외벌이지만 남편이 버는 돈으로 네 식구 그럭저럭 살만했었다. 그런데 자꾸 돈이 벌고 싶었다.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답을 찾았다. 나는 내 정체성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말고 '나'로서 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위해 사는 삶. 해야 돼서 하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이 행복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 행복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서에도 단계가 필요하다. 나는 그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단계라 부른다. 이 개념은 철학자 니체에게서 가져왔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독서의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로 표현한 게 흥미로웠다. 낙타는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을 걸어가면서도 등에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주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뿐. 대부분의 인간이 낙타의 정신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힘들어도 왜 힘든지 모르고 그저 버티고 견뎌낸다.
사자는 자유롭다. 두려울 것 없는 용기를 가졌고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개척한다. 낙타에 비해서는 행복해 보이지만 늘 경쟁을 해야 하며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또 자신만을 위해서 사냥을 할 뿐 나누지 않는다. 생존의 스트레스에 늘 시달린다.
어린아이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단계이다. 길가의 돌멩이를 가지고도 몇 시간을 즐겁게 놀고 친구가 곁에 오면 자기 것을 나누어준다.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욕망도 없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하다. 무한 긍정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처음 책을 읽으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일단 펼쳐는 보지만 왠지 잘 읽히지 않아 절반도 못 읽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낙타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급해 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에 맞게 꾸준히 하다 보면 사자의 단계에 이른다. 그때는 남들이 골라준 책이 아닌 스스로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고 주도적으로 읽는다. 더 많은 책을 읽어 치우겠다는 조급함과 모든 것을 터득한 듯한 자만심이 생기는 단계이기도 하다.
그 단계를 지나가면 문장 하나에 자기만의 철학을 만들고 깨달음의 희열을 느끼는 어린아이 단계가 된다. 많은 분량을 읽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해석을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진정한 사유와 깨달음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날은 이 책 한 권을 오늘 내로 꼭 읽겠다는 욕심이 앞서기도 했다. 이번 달에 읽을 책을 이만큼 쌓아놓기도 한다. 책을 펼쳐놓고도 읽히지가 않아서 중간에 덮어버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를 움찔하게 만들고 눈물 나게 하는 것은 한 줄의 문장이었다. 난 아마도 낙타와 사자 사이 그 어딘가쯤에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나만의 철학이 생기는 날을 바라고 있다.
많은 돈과 명예도 좋지만 그저 책 한 권 손에 들고 커피가 있는 작은 탁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책도 보다가 하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도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아웃풋을 해야 할 때 번아웃에 빠지곤 한다. 힘듦을 회피하기 위해서 유튜브를 보고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거나 게임을 한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끝난 뒤에는 공허함만 남는다. 그럴 때에는 나에게 필요한 책을 한 권을 찾아서 읽어보면 어떨까 권하고 싶다.
읽는 순간은 지루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좋은 글을 읽으며 생각에 빠지는 시간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때의 감정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저마다 삶에도 적용해 힘을 얻게 만든다. 그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행복이다.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나를 위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길 바랐다. 말로는 쉽지만 이런 마음을 갖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기 원망.. 이런 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내면의 축복을 가져다줬다.
모든 현실은 우리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결코 밖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상상의 힘>중에서
고명환 작가는 '나가는 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들고 내가 하는 생각이 나를 만들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만든다. 위대한 도서관을 만나라. 도서관에 앉아 위대한 생각을 하라.
책으로 인생이 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특히 고명환 작가의 이야기는 마음에 많이 와닿는다. 책으로 그토록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는 그가 부럽다. 추천해 준 책들을 관심 목록에 추가했다.
누군가가 만들어둔 질문에 대답만 해왔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만든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나만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책을 읽고 충분히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읽고 생각한 것들이 나를 만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