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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갈순덕 Sep 10. 2024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수십 번의 희로애락 겪는 사회복지사의 하루

“(쩌렁쩌렁)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쩌렁쩌렁) 왜 이렇게 선생님들이 없어요?”

“어머니, 아직 아홉 시 전이라서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직원들보다 더 일찍 오셨네요”


 오전 8시 45분, 미자엄마(가명)가 사무실에 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무실에 들어서는 직원마다 인사하고 말을 건넨다. 정신없이 출근하고 업무를 준비하는데 미자엄마까지 일찍 왔으니 시작부터 더 정신이 없다.      

 나는 영구임대단지 안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18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한다. 법으로 영구임대단지 안 일정 공간에 사회복지관을 설치하고 운영하도록 정했다. 우리 복지관도 아파트가 지어진 30년 전에 문을 열었다. 당연히 수십 년간 우리 복지관을 다녀간 이용자 수도, 입퇴사한 직원도 상당하다.     


 하루종일 아주 많은 분이 사무실에 오고 간다. 귀가 어두워서 전화로 일 처리가 안되니 도와달라는 분, 우편물이 왔는데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달라는 분, 행정업무를 도와달라는 분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정말 많은 분과 일상을 함께 한다.      


 “(쾅) 관장님 좀 만나러 왔어요!”

 “차 과장! 나와 봐!”     


 커피 한잔 타고 자리에 앉아 오늘 해야 할 일을 훑어보고 있을 즈음, 누군가 거나하게 취해서 문을 활짝 열고 소리친다. 밤새 술 한잔 하다 다툼이 있었거나, 전날 속상한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또 들어달라고 온 거라 누군가는 그 상대를 해드려야 한다. 할 일이 많은 날은 모니터 밑으로 고개를 쳐 박고 “저 없어요”라고 하고 싶다.      


 사무실에서 모시고 나가 휴게실에 앉으라고 한 뒤, 시원한 물을 한 잔 건넨다. 온 이유부터 본인 살아온 이야기, 고생하고 억울했던 일을 한참 쏟아내고 분이 풀리고 나면 고맙다고, 본인 더 신경 써주라는 부탁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원래 술 드시고 오면 안 된다고 당부드리고 댁에 가서 한숨 주무시라 달래 보낸다.  

    

 한차례 방어전을 마치면 기운이 빠진다. 아주 오래전에는 다 선배들이 했던 일인데  새삼 내가 그 선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리에 돌아오니 아침에 타 놓은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사람을 만나는 일, 그 삶을 살피고 돕는 일은 참 녹록지 않구나. 십 수년을 일해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내 마음은 식은 커피처럼 갑자기 밍밍해진다.      


 우리 복지관 직원들은 여러 일로 사람을 만나고 돕는다. 일대일로 만나 일상생활부터 자녀를 양육하는 일, 삶의 의지를 되찾도록 돕기도 하고, 혼자 계시는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필요한 여러 복지서비스를 살펴서 연계하기도 한다. 주민모임을 운영하여 참여하는 주민과 우리 동네의 변화를 돕기도 한다.      


 “영양사님, 혹시 재선어머니(가명) 오늘 식사 오셨어요?”

 “네, 오셨죠. 그런데 요즘 안색이 안 좋으세요. 어디 편찮으시냐 여쭸더니 아니라고는 하시는데 걱정되더라고요”


 복지관 경로식당은 매일 300명이 넘는 분들에게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대접한다. 그러다 보니 전화드리고 댁으로 찾아가도 만나지 못할 때 경로식당 영양사님과 조리장님께 여쭈면 알 수 있다.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 한분 한분 음식 취향이나 드러나지 않은 성향까지 다 안다. 정말이지 한분 한분께 식사를 드리면서 정성과 애정까지 준비한다.      


 오후가 되면 매일 사무실로 전화하는 청년이 있다. 전화를 받으면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몇 시에 끝나는지, 00동에 있는 복지관 맞는지, 엘리베이터를 잠갔는지. 신입 직원이 이 전화를 처음 받으면 엄청 당황하지만 또 열심히 대답한다. 전화를 친절하게 받으라고 배웠으니까.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화도 내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윽박질러보기도 한다. 사실 이 청년은 장애가 있어서 자신만의 루틴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 매일 전화를 하는 거다. 이해도 되지만 큰 행사가 있거나 바쁠 때는 정말 힘들다. 그나마 여유가 있거나 노련한 직원이 전화를 받아 어르고 달래서 전화를 마친다.   

   

 내 뜻대로 사람이 변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진심과 정성으로 당사자를 만나도 서운할 때가 있다. 우리는 화풀이 상대가 되기도 하고, 이웃끼리 싸우고 나면 중재자가 되기도 한다. 정성으로 준비한 점심에 타박을 듣기도 하고, 복지관이 뭐 하는 거냐고 다짜고짜 불호령을 맞기도 한다.      


 그럼에도 30년 동안 주민의 삶과 가깝게 닿아있어서 우리는 또 당사자의 진심을 안다. 지나가다 보고 싶어 왔다는 분, 감자나 고구마를 삶아서 먹으라고 주시는 분도 있다. 급병으로 고생할 때 도와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받는다. 동료의 아이가 진학할 때 축하한다는 응원을 받기도 하고 퇴근길에 만난 우리 아이 손에 용돈을 쥐어주는 아버님도 계시다.      


 감사한 마음으로 또 열심히 당사자를 만난다. 사람을 만나는 일, 정말 어렵고 수고스럽다. 

 오늘도 우리는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복지관 앞에서 본 가을하늘_지독하게 예쁘다




잠깐이요) 출중한 미모를 겸비하고 글빨로 압살하는 #배지영 작가님으로 부터 첨삭지도 받아 완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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