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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갈순덕 Sep 17. 2024

극적 합의 후에 "아니, 아니" 왜죠?

날 닮은 건 비밀

둘째는 없다고 외쳤던 선언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여느 엄마처럼 혼자 노는 첫 아이 뒷모습을 나도 보고야 말았으니까.


둘째는 첫째와 다르게 키웠다. 일찌감치 분유 수유로 갈아타니 내 먹거리 마실거리 모두 자유로웠다. 첫째 세 돌까지 회식조차 가지않았던 내가 둘째 6개월 차에 해외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그래서일까. 무엇이든 조심스러운 첫와 달리 둘째는 무엇이든 적극적이고 열심히 한다. 뭐든지 의욕적인 아이와 집에서만큼은 쉬고 싶은 엄마. 나는 사랑과 원망을 한 스푼씩 섞어 부른다. ‘오두방정_이진’.


 학용품을 사러 문구점에 종종 간다. 장난감 코너를 기웃거리면서 엄마 눈치를 보지만, 내 강력한 말발 앞에서 쉽게 무릎을 꿇는 첫째. 둘째는 다르다. 문구점 모든 코너를 돌아보며 신기해한다.


“엄마 이리 와 봐, 빨리!”


 숨 넘어가게 나를 불러서 보여주고 설명해 준다. 문구점 사장님도 똑 부러진다고 둘째를 한껏 치켜세워 준다. 천군만마를 얻었으니 서둘러 내빼려는 나를 자신 있게 막아선다.


첫째에게 먹힌 엄마 말발은 조각나 흩어져 버린다. 첫째도 동생을 설득하려다가 이내 포기한다. 노트 한 권 사러 갔다가 이것저것 사 오기 일쑤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한 저녁. 이제 나도 좀 쉬면 좋으련만 둘째 아이는 그림을 그려야겠단다.


 “꼭 오늘 그려야 해?”

 “내일 선생님 오시니까 내일 하면 어때?”

 “티비 볼까?”


 이리저리 꼬드겨봐도 안 넘어온다. 소매까지 달린 앞치마를 입고 거실 한가운데에서 그리는 조건으로 극적 합의를 보았다. 부랴부랴 출근하느라 너저분한 부엌과 방을 정리하고 나서야 나도 소파에 앉았다.


순식간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아주 잠깐 졸았을까. 기어코 그림놀이가 물감놀이가 되었다.


“그림 그린다더니 그 손바닥 머래?”

“아니 아니(아니,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 물감이 살짝 묻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파란색이잖아, 그래서 엄마 기분 좋게 보여주려고”


 평소와 달리 주변이 깨끗하니 혼낼 수도 없고, 내 기분 좋으라고 했다니 더욱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웃어버린다.     


 사무실 모니터 바탕화면은 항상 둘째 사진으로 채운다.둘째만 지을 수 있는 몸짓과 웃음과 표정이 있다. 볼수록 기가 막히는데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오두방정도 사실 외탁이지 싶다.


내 눈에만 너무 예뻐서 더욱 가꾸어드려야 한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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