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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제이 May 11. 2019

와우정사, 연등으로 물들다

소망의 흔적들로 가득한 곳

일곱 번째,

한 날



" 오면 이 곳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들을  내려놓고 편안해질 수 있어서 참 좋더라. 그리고 내가 간절히 빌면 부처님이 다 들어주실 것 같아서 좋아. 근데 여기 진짜 참 좋다!"


엄마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돌탑 위 황금불두(부처님 머리) 앞에서 합장을 하시고는 연신 싱글벙글하다. 따뜻한 햇살 때문인지, 기분 좋은 바람 때문인지, 가족과 함께 여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엄마 얼굴은 기분 좋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어디서 흘러나오는 건지 산사에 울려 퍼지는 불경 소리에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엄마와 오랜만의 나들이다. 내일이 석가탄신일이라 우린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는 하루 전날, 서울 근교의 용인 와우정사를 찾았다. 불도 신자인 엄마는 을 참 좋아하신다. 반면, 난 미국 유학시절엔 친구 따라 교회, 성당을 다녔고, 한국 돌아와서는 가족들따라 절을 다니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매한 사람이다.


석가탄신일 연등
소망의 흔적들로 가득한 곳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와우정사는 알록달록 연등쁘게 들었다. 저 연등에는 많은 이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으리라. 곳에 사람의 소망 흔적들이 보인다. 이름을 써놓은 기왓장에도, 차곡히 쌓아 놓은 작은 돌에도, 12 지신 상 위에 놓인 지폐와 동전에도.


엄마는 12 지신 상 중 '돼지'에게 천 원짜리 지폐를 얹어놓으시고는 코를 쓰담 쓰담하며 소원을 비신다. 그 소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난 잘 알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이곳에 두고 간 사람들의 염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다. 이 세상의 슬픔 고난들이 조 사라져 주길. 미소짓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빌어본다.


소원 기왓장


걷다 보니 여기저기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한국 불상뿐 아니라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중국, 태국 등 외국 불상들 3,000여 점이 전시되어있는 세계만불전도를 볼 수 있어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다문화 사찰로 유명하다고 한다.


작은 돌을 빼곡히 쌓아 올린 석탑은 통일을 염원하며 주요 불교 성지와 백두산, 히말라야 산맥, 베를린 장벽에서  가져온 돌을 쌓아 만들었다고 하니 무척이나 흥미롭다 (갑분 다큐멘터리). 여느 사찰과 다르게 각국의 이색적인 불상과 돌들로 공원처럼 꾸며진 곳 눈길을 사로잡는 모든 것이 재미있다. 거기에 봄기운 가득한 꽃들의 향기까지 더해 오감만족.


부처님 일대기가 그려진 벽화


엄마와 란히 팔짱 끼고 걷는 내 옆으로 남편이 벽화에 적힌 부처님이 열반에 오르기까지의 일대기를 하나하나 읽어준다. 흥미로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구니'라는 단어에 우리는 마주 보며 깔깔거리고 웃는다. 낯설고 신기한 곳에서 친절한 훈남 여행 가이드를 만난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높은 언덕 힘든 줄 모르고 단숨에 올라갔다.




"여긴 내가 가본 사찰 중에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 같아!"


 엄마는 이곳이 마음에 드셨는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남편이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낸 이곳을 엄마가 무척 좋아해 주시니, 멀리 해외여행이라도 보내드린 것 마냥 뿌듯하다. 하나밖에 없는 사위의 첫 생일이라고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함께 멀리까지 와주신 고마운 우리 엄마. 늘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진 못하지만 덕분에 오늘 또 엄마와의 추억을 +1 추가했다.


올해 부쩍 짧아진 봄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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