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라 타이트 한 옷들이 불편한 걸 괜히 남편에게 투정 부린다. 남편은 그럼 편한 원피스를 사러 가자며 백화점으로 날 데리고 갔다. 회사에서도 입어야 하니 너무 캐주얼하면 안 되고 근데 또 너무 라인이 없어도 안 되고 불편해서도 안 되고... 내가 원하는 구색을 갖춘 옷들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남편은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이 옷 저 옷을 가져다 "이건 어때? 잘 어울릴 것 같은데?"라며 내게 어울릴 법한 옷들을 골라 온다. 남편은 "오빠가 선물로 사 줄 테니 다 골라!"라더니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한 원피스, 슬랙스, 셔츠 등이 담긴 쇼핑백을 잔뜩 손에 들고 나온다. 남편은 나보다 한 살이 어린데, 이럴 땐 본인을 '오빠'라고 부르며 나보다 어른인 척한다. 그런 남편이 마냥 사랑스럽다.
다음 날은 우리 둘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다른 해 같은 날 5월에 태어났다.
생일이 다가오면 우리의 생일을 앞두고 있음에도 서로의 생일 선물을 챙기기 바쁘다. 생일이 같아서 함께 축하해주니 기쁨이 두배라 좋기도 한데 오롯이 나의 생일을 즐길 수 없는 것 같은 아쉬움도 있다. 늦은 퇴근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생일인데 야근하느라 같이 밥도 못 먹고 속상하다. 그렇지? 근데 내 선물은 언제 줄 거야?" "어제 옷 사줬잖아. 그게 생일 선물이야!" "쳇, 그건 임신 선물로 사준 거 아냐?" "아니, 생일 선물 미리 사준 건데~" "싫어~ 그거 생일 선물 안 할래!"
괜한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첫 생일인데 이렇게 밥도 한 끼 같이 못 먹고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는 건가 싶어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내가 바빠서 남편 생일도 못 챙겼으면서 남편에게 선물을 기대하는 내가 참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숨길 수 없나 보다.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에 투벅투벅 삐침이 묻어있다.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깜깜하다.
'좀 전에 통화했을 때 집이라고 했는데 어디 간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남편이 생일 축하 음악과 함께 한 손에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 다가온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똥이 생일 축하합니다."
가슴이 뭉클하다. 남편에게 토라지고 섭섭해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진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애써 참으며 "이게 다 뭐야?" 하며 핀잔을 준다.남편은 나보다 먼저 퇴근해 오는 길에 꽃다발을 사고,몰래 숨겨 둔 내 생일 선물까지 꺼내 완벽하게 모든 걸 준비했다.
2019년 5월 14일 결혼 후 첫번째 생일
갑자기 아무것도 준비 못한 내가 초라 해 진다. 남편이 운동할 때 입을 옷을 함께 가서 사주기로 미리 약속은 했었지만, 오늘 함께 나눠 갖지 못해 괜히 마음이 무겁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선물을 고르러 가기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단 생각이 들어, 다음 날 일찍 퇴근을 하고 나이키 매장을 들렀다. 평소 남편이 갖고 싶어 하던 바람막이를 골랐다. 그리고 함께 입으면 이쁠 것 같은 반바지와 티셔츠도 남성 선호도를 파악한답시고 매장 직원과 함께 고민해서골랐다.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 나는 남편이 회식 끝나고 들어오기 전에 선물들을 미리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동안 부끄러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들을 손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희미하고 애매한 선이 아닌 두줄이 선명하게 나온 임신 테스트기도 함께 준비했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
"아빠, 내년 1월에 만나요"
이번 생일은
우리 부부가 결혼 후 함께 맞이 하는 첫 생일이다.
그리고 아기천사가 함께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같은 날 태어난 우린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는 그 날 이미 서로에게 인연의 끈이 묶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