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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제이 May 19. 2019

자발적 임신 준비생 (임준생)

젤리곰, 너를 위해서라면


02. 가족계획



"연말 생은 같은 나이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늦고,
어린이 집에 가면 뒤쳐져서 장난감 뺏겨.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애들은 뛰어다니는데
우리 애는 아직 기어 다니면 속상할 때가 있어."


육아 선배들의 조언에 팔랑귀 우리 부부는 아기에게 태어난 해 일 년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해 주자며 2019년 1월생을 계획했다. 2019년 2월 4일 출산까지가 '황금 돼지띠'라기에 1월에 태어나면 두 가지를 다 줄 수 있으니 좋겠다는 욕심 부렸다. 미신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60년에 한 번 돌아온다기에, 자본주의 시대 최고의 복인 재물복을 타고난다기에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이쯤이면 미신을 믿는 사람인 걸로.


1월에 태어난 황금돼지 띠면 가장 겠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리라는 법도 없고, 아기는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시는 거우리 노력이랑은 상관없이 결국 태어나는 운명은 본인이 정한다친정 엄마의 말이 과학 뒤편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설명해 주었기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기에 조바심 낼 거 다 내면서도 입으로는 그냥  마음 편히 가지고 운명에 맡기자는 말로 나 자신을 다독였다.


결혼 6개월에 접어들면서 양가에서 아기 소식을 기다리는 티를 내기 시작했고, 마치 아직까지 아기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둘의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내비치신다. 내 직장이 해외 출장도 많고, 야근이 많아 임신에 해로우니 이직을 해야 아기가 생긴다는 결론까지 오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든 걸 미리 계획하고 깊이 있게 파헤치는 직업병 때문인지 먼 옛날, 기억조차 희미해진, 학교에서 배웠던 난소-난포-배란-수정-난할-착상의 임신 과정 그리고 LH, HCG 호르몬 수치 등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처음으로 배테기 (배란테스트기)라는 것을 주문했다. 엄청 파워의 무기를 장착한 것 마냥 남편에게 배테기의 원리를 설명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요즘엔 앱으로 '테스트 스트립'을 촬영하면 수치를 분석해 배란일을 알려주고 데이터를 모아 차트를 만들어준다. 신기방기.



배테기가 너무 기특하게 '오늘이 배란일입니다.' 하는 날 마치 임신이라도  듯 기뻐했고, 그날 이후 난 튼튼한 집을 짓길 기도하며 '착상에 좋은 음식'을 굳이 찾아 먹고 있다. 바나나는 흐물거려서 싫어하는데 잠바 '아보카도 바나'를 원샷하고, 텁텁한 추어탕을 바닥까지 클리어하고, 평소 느끼하다며 찾아먹지 않는 '곰탕'을 역꾸역 먹고, 여름에도 콩국수 한번 먹지 않는데 100% 냉장 두유를 새벽 배송시켜먹고,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내가 '소화가 잘 되는 우유'를 마시 화장실을 들락 거리고 있다.


늘 회사 출근 복장은 비즈니스 캐주얼로 하이힐을 고집하던 내가 단화를 신기 시작했고, 꽉 끼는 옷 나쁘다기에 하이웨스트의 타이트 한 스커트를 좋아하는 내가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한다. 그런 내 모습이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아 썩 맘에 들진 않지만 당분간 참으면 괜찮아진다고 애써 위로를 한다.


남편은 그런 나작은 변화들을 지켜보며 엄지 척과 함께 '엄마는 위대하다'를 외어깨를 토닥여준다.


'젤리곰' 네가 꼭 내게 와줬으면 하니까,

널 위해서라면 내가 조금 미워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꺼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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