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영화 첫 번째 시리즈: 윤성현 감독의 <콜>
다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셨나요? 저는 올해도 어김없이 귀여운 꼬마, 케빈과 함께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생겼고요. 지난달 공개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기로 선언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게으름은 물론이고, 시작도 하지 않고 완성도를 고민하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글 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첫 번째 글을 완성했습니다. 이번 글에선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제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나열해보려 합니다. 생각이 이끄는 대로 두서 없이 써 내려가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조금은 정신없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콜>, 그리고 이충현 감독
그렇게 선정된 12월 첫 영화는 바로 이충현 감독의 <콜>입니다. 이 영화는 코로나로 인해 안타깝게 영화관에 걸리지 못하고,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에 이어 넷플릭스에서 단독 개봉하였습니다. 스트리밍 콘텐츠와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콜>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영화를 어느 정도까지 다루어도 될지가 큰 고민입니다. 너무 자세하게 썼다가는 소개가 아니라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최대한 절제하는 마음으로 써봤지만, 스포에 예민하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간단한 영화 소개와 함께 제가 발견한 영화적 장치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콜>에 출연한 박신혜, 전종서, 김성령 배우가 아는 형님 프로그램에 나와 영화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어 홍보를 하려 나왔겠거니 했는데 220회 방송이더군요. 찾아보니 무려 8개월 전인 올해 3월 7일 방영한 것이었습니다. 올해 초 영화관에 방문했을 때 <콜>의 간판이 크게 걸려있는걸 저도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만큼 오랜 기간 개봉이 연기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콜>은 충무로의 기대주, 이충현 감독이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는 2015년 단편 영화 <몸값>으로 각종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을 휩쓸며,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감독입니다. 중년 남자가 여고생과 성매매 가격을 흥정하며 벌어지는 일을 원테이크로 담아낸 작품 <몸값>은 저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애정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시 주연으로 등장했던 이주영, 박형수 배우가 이번 <콜>에서 서연의 휴대폰을 주운 사람의 목소리로 짧게 등장하여 팬들에게 반가움을 안겨줍니다.
<콜>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서연(박신혜 분)은 집에 있던 낡은 전화기를 통해 영숙(전종서 분)과 통화를 하게 됩니다. 서로가 다른 시간이지만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둘은 같은 나이와 비슷한 가족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금세 친구가 됩니다. 과거가 바뀌면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둘은 각자의 현재에서 서로를 위한 작은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우연찮게 영숙 안에 잠재되어있던 잔혹성을 깨우게 되고, 서연은 변해버린 영숙으로부터 자신의 일상이 위협받기 시작합니다.
작품 자체로만 보자면.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과거가 변하면 미래가 변한다', ‘과거를 바꾸면 미래에 리스크가 생긴다’ 등의 다소 진부한 설정을 기반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다루는 탓에 개연성에서 근본적 문제가 드러납니다. 왜 많은 과거 중 특정 영숙의 과거와만 연결되는지, 영숙이 바꾼 과거가 어떻게 서연에게만 기억되는지 등의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가진 신선함과 파괴력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박훈정 감독의 <마녀>와 더불어 최신 한국 장르물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영화분석
스포주의!
이제부터는 소개보다는 분석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영화적 장치, 기술을 짚어가며 설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토리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스포가 시작되니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먼저 넷플리스에 가셔서 영화를 보시고 난 후, 글을 읽으며 생각을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순서는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부터 다룬 것이니,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 음악을 귀담아듣는 편이 아닙니다. 일부로 그러는 것은 아니고, 음악적 재능이 부족한 탓인지 영화를 볼 때면 늘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느라 청각적인 부분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 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음악 장르는 ‘일렉트로닉’입니다. 솔직히 음악에 대해 잘 몰라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EDM, 사이버 펑크, 락 메탈, 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영숙이 좋아하는 서태지의 음악은 물론이고, 영화 중간중간 사이코적인 요소를 부각하는 BGM으로도 사용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락 음악이 오직 영숙이 등장하는 장면에만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 학기 공부한 영화사 수업에서 고전 할리우드 음악의 특징에 대해 배운 바가 있습니다. 인물에게 고유한 테마의 음악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 중 하나인데, 이는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음악이 바로 영숙의 고유한 테마입니다. 이 노래들은 영숙에게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실제 고통스러운 생활에서 유일한 해방구인 서연과 교류하는 장면에서 서태지의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고, 첫 살인을 저지른 이후 시내로 나가는 장면에서 슬로우 모션과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나머지는 감정을 호소하거나, 상황을 전개시키는 역할로 사용되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조명입니다. 어쩌면 ‘색’이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색 차이를 통한 시공간 분리는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 요소입니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가상 세계는 초록색, 현실은 푸른색으로 구분하여 시공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과거 영숙의 시간과 현재 서연의 시간을 조명의 색으로 구분합니다. 영숙은 텅스텐 광의 주황빛을 사용하였고, 서연은 데이 라이트를 사용하여 푸른빛을 강조하였습니다. 영숙과 서연이 통화를 하며 친해져 가는 장면이 교차편집될 때 가장 두드러집니다. 어린 서연의 서사도 주황색 느낌을 살린 것을 보아 영숙과 서연을 나누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분리하는 장치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이후, 살인마로 변해가는 영숙과 함께 바뀌는 집안의 조명도 굉장히 좋습니다. 빨강, 초록 조명을 메인으로 자극적이고, 강렬한 색을 내뿜습니다. 특히 냉장고 안에서 나오는 형형색색의 조명은 영숙의 광기를 쪼개 담아놓은 것 같습니다. 같은 느낌의 조명을 사용한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과는 다르게 아주 잘 사용한 영화입니다. 서연의 조명도 마찬가지로 서연이 느끼는 두려움이 증가할수록 점점 더 푸르게 변경됩니다.
의상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상은 과거가 바뀔 때마다 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화 처음에는 서연은 무채색 계열의 니트, 영숙은 환자복 같은 얇은 흰 색 잠옷을 입고 있습니다. 영숙이 과거에서 서연의 아버지를 살려주자, 서연의 미래가 바뀌는데 장소뿐 아니라 그녀가 입고 있는 옷도 검은 니트에서 연보라색 원피스로 변합니다. 가족을 되찾아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서연의 모습이 그녀가 입은 밝은 계열의 옷과 화려한 원피스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영숙의 살인으로 아버지가 사라진 미래에선, 그녀의 옷도 다시 검은색 니트로 돌아와 가족을 잃은 슬픔을 표현합니다. 동시에 머리 스타일도 변화가 찾아오는데, 가족을 잃은 서연은 단발머리, 가족과 함께인 서연은 긴 장발 스타일을 사용하여 같은 인물에게도 상황에 따른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무당 엄마를 둔 영숙은 정신병 환자가 입을 것만 같은 얇은 흰색 잠옷을 하루 종일 입고 있습니다. 광적인 엄마의 집착으로 인해 그녀가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인 이후에 그녀는 그동안은 맛보지 못했던 희열을 느끼고, 자신이 입던 옷을 갈아치웁니다. 여러 옷을 지나 스트라이프와 니트에 안착하는데, 특히나 스트라이프 옷이 잘 어울립니다.
배우 연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유사 로봇인 제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 우습긴 하겠지만,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연기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드물게 선수 개인의 기량이 팀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전종서’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모그래피가 이창동 감독의 <버닝>, 고작 하나인 배우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사실 버닝을 본 이후, 배우가 빨리 뜨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한 켠에는 저만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제가 빨리 성공하여 이런 배우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영화 초반 엄마에게 학대를 당하는 여린 소녀의 연기를 보여주던 그녀는 살인 이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립니다. 경찰을 앞에 두고 뻔뻔스러운 연기를 하는가 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 서연에게는 쌍욕을 하는 무서운 존재로 순식간에 둔갑합니다. 박신혜 배우의 욕은 욕을 갓 배운 초등학생의 느낌이 나는 반면, 전종서 배우의 욕은 김수미 할머니처럼 물 흐르듯 캐릭터와 하나가 됩니다. 특히 그녀는 웃음이 매력적인데, 서연과 아버지가 집에 방문하자, 이미 죽은 엄마를 찾으며 문 뒤에서 짓는 그 사이코적인 웃음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그녀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지 벌써부터 기대로 가득합니다.
제가 준비한 분석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많은 것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영화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정도 깊이가 아니었는데, 몇 번이고 글을 위해 다시 보다 보니 시야가 열린 기분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제 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예전처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첫 글을 마쳤습니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두서없이 펼쳐놓은 기분이라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일단은 첫걸음을 떼었다는데 의의를 두겠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철학적이고, 분석적인, 그리고 구조가 잡힌 문학적인 글을 써보겠습니다. 다음 영화에 대해 미리 스포를 해드리자면, 12월 이달의 영화는 멧 데이먼이 출연한 <본 시리즈>와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며칠 남지 않은 12월에 더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요. 그럼 앞으로 더 좋은 영화와 글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