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의 런치 콘서트

feat. 멋쟁이 할아버지

by jose

바흐와 베토벤, 슈만과 브람스의 나라, 독일.


'클래식'의 국가답게, 독일에는 130개의 직업오케스트라(일부 방송국 소속)와 80개의 음악극장이 존재한다고 한다(출처: https://www.tatsachen-ueber-deutschland.de/ko/bunryu/munhwa-midieo/saengdonggam-neomcineun-munhwagugga). 내가 예전에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브레멘에도 역시 공연장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그리 일상적이지만은 않은 클래식 공연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는 곳이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나지만, 독일 여행에서 공연을 한 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베를린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을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Staatsoper Unter den Linden"이라고 하는, 베를린 '운터 덴 린덴' 지역에 있는 공연장을 찾을 수 있었다(https://www.staatsoper-berlin.de/de/). 오페라 공연부터, 발레, 클래식 콘서트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프로그램과 좌석에 따라 가격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20유로 정도면 볼 수 있는 공연들이 꽤 있었다.


여기로 해야겠다, 하고 공연과 날짜를 정하고 있던 중, 베를린 여행 책자에서 반가운 정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무료 런치 콘서트! 베를린 필하모니커(Berliner Philharmoniker)는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관현악단이다. 우리가 베를린에 있는 동안의 공연표는 이미 매진이었지만(매진이 아니었어도 아마 비싸서 못 갔지 싶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 무료 콘서트를 한다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베를린에 있으니, 이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베를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무료 혜택을 받아내고자(!) 동선까지 바꾼다. 이때까지만 해도 '워낙 유명하니 궁금해서' 정도의 마음이었지만, 정말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물론 공연이 좋았던 것도 있었다. 연주의, 특히 합주의 진짜 훌륭함은 현란한 주법을 소화해내는 데 있다기보다는 각각 악기 소리의 높낮이와 강약이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연주 자체도 훌륭해 너무나 편안히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면, 정식 공연홀이 아닌 로비에 꾸민 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탓에 정식 홀에서만큼의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마이킹이 정교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음량이 작았다는 점 정도? (무료 공연인데 이 정도도 훌륭하지ㅠ)


로비에 꾸며진 무대와 객석


공연도 공연이었지만 나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이 있었다. 따로 티켓을 받고 입장해야 하는 건지 뭔지, 시스템을 잘 몰라서 조금 일찍이, 한 12시경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꽤나 많은 사람들이 건물 문 앞에 이미 길게 죽 줄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1시까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바람은 쌩쌩 불고...


일단은 기다려보자, 하고 조금 기다리고 있는데 12시가 땡!하자, 건물 로비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관계자가 오늘 공연에 대한 설명 용지를 나눠주고, 자율 기부할 수 있는 곳도 준비되어 있었다. 널찍한 로비에 무대가 꾸며져 있고, 그 앞으로 백 석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의자가 놓여있는데 이 곳은 경로우대석! 나머지 공간, 계단이나 계단 사이 바닥 등에는 자유롭게 앉을 수 있고, 또 서서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쪽에서는 커피나 와인 같은 음료도 판매한다.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와인잔 하나씩을 들고 좌석에, 계단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 무료 공연은 수년 동안 매주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이 정도의 사람들이 온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만 했다. 노인이 많으니 그들을 위한 좌석을 따로 마련하고, 여행자, 젊은이, 아이들 등은 자유로운 관객이 된다. 보통은 45분 정도, 우리가 간 날은 조~금 길게 해서 1시간 정도의 공연을 했다. 관객에게도 부담 없는 시간이다. 공연 막바지쯤 되니 자리를 뜨는 관객도 몇 있긴 했지만, 캐주얼한 분위기인지라 그렇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있어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모인 사람이 대략 2-300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한 달을 4주로 잡으면 한 달에 대략 1천 명의 관객이다. 수치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이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있는 문화수준이 부럽게 느껴졌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좀 삐딱하게 말하면) 있는 집 자식들이나 할 수 있는 음악이고 그 프라이드(?) 탓인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클래식 연주자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 비해, 세계 최고라고 하는 관현악단이 매주 진행하는 무료 공연이 있고 길거리 곳곳에서 바이올린, 첼로 등등 클래식 연주자들을 볼 수 있는 것도 부러운 일이다.


앞의 영화관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예술영화관을 찾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이곳 베를린 필하모니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문화라는 것이 사치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고(우리 부모님은 종종 영화관을 가실 때면 아직도 "우리가 언제부터 극장 구경 다녔냐"며 신기(?)해하신다), 여전히 경제적 격차만큼 문화적 격차가 심한 우리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까. 문화의 가치가 조금 더 대우받는 사회가 되기를, 문화라는 것이 의식주만큼이나 삶에서 중요한 본질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덧.

이곳에서 한 가지 더더더더더 감동적인 일화가 있어 덧붙인다. 로비로 입장하는데 부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 보였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신지 휠체어에 타 계셨고, 그 뒤를 할아버지가 (그 핫하다는!) 전동휠을 타고 휠체어를 밀면서 지나가시는 것이었다. 와, 최고 간지다!

전동휠 요런 거...

한참 뒤, 공연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로비 한쪽에서 노부부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휠체어에서 살짝 일으켜 껴안은 채로 겉옷을 입히고 계셨다. 순간, 눈물이 핑...!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전동휠을 사고 타는 법을 배우고 공연을 보러 오는 모습. 너무나 포근하게 할머니를 안은 손길.





바깥에는 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너무나도 따듯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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