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잠깐 일을 도왔던 영화사에서 영화 제작 전 붐업을 위한 미디어아트 행사를 국회에서 한 적이 있었다. 건물 외벽에 영상을 쏘아 “국회의사당 돔을 열고 나오는 로보트 태권 브이...!”를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요즘이야 이런 볼거리를 만드는 게 (돈은 많이 들겠지만...)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때가 벌써... 2010년인가 11년이었으니까... 기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이런 시도 자체가 도전이 되던 행사였다. (결과는...? 당일날 눈이 오는 바람에 어두워야 하는 외부 환경에 변수가 되었고, 음, 행사는 진행됐으나, 영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미디어 관련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터라, 관련 정책토론회나 세미나 등이 있을 때 종종 국회에 가곤 하는데, 이런 연결고리가 없는 한 국회를 갈 일이 딱히 있진 않을 것이다. 국회 도서관에 가는 일 정도가 있을 수 있겠다. 이건 어찌 보면 정당 가입이나 정책 수립에 관심을 가지는 등의 일상적인 정치 참여율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정치 혐오'는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나부터가 문제지 뭐.
10년 전 동생과 베를린에 갔을 때는 국회의사당 앞 잔디에서 건물만 보고 발길을 돌렸었는데, 이번엔 실내가 궁금하기도 하고 베를린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데다가, 무료(!)이기까지 해서, 국회의사당 돔투어를 신청했다.
온라인 홈페이지(https://visite.bundestag.de/BAPWeb/pages/createBookingRequest.jsf?lang=en)에서 사전 신청을 한 뒤 허가 메일을 프린트 해 가야 입장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못하고 갔더라도 사람이 없거나 비수기에는 현장에서 입장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예약한 날 베를린에 사는 친구도 같이 갈까 해서 방문 몇일 전 추가 예약을 하려고 하니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던 걸로 보아, 미리미리 예약하고 가는 게 안전할 것 같다. 메일에는 예약 시간, 장소, 입장하기 전에 본인 확인과 짐 검사 등이 있으니 예약시간보다 15분 정도 빨리 오라는 등의 몇 가지 안내 사항이 적혀 있다. 나는 그냥 개인적으로 돔만 둘러보는 투어를 신청했는데, 가이드를 따라 각 공간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는 투어와 연방의회 회의장을 보고 돔을 방문하는 투어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베를린에 있는 내내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 날도 저녁 즈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내내 주룩주룩 많이도 온다. 어렵게 도착해 예약 확인과 여권 검사, 짐 검사까지 통과하고 학생 자원봉사자인 것 같은 친구를 따라 이동한다. 일정 수의 사람이 모이면 학교 선생님처럼 사람들을 데리고 돔이 있는 건물로 이동시키고 거기서부터는 자유롭게 둘러보고 나오면 되는 시스템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돔 부분까지 올라가면 무료로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해준다. 독일어, 영어를 비롯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무려 10개 언어의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다(하지만 유럽권 언어뿐, 아시아권 언어는 없다). 오디오를 들고 동글동글 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이동하는데 해당 스팟을 감지해 거기에 맞는 해설을 해준다. 국회의사당 관련 해설과 더불어 돔 바깥으로 보이는 주변 모습들, 브란덴부르크문, 전승기념탑, 텔레비전탑, 박물관 섬 등 특정 건축물이나 장소 등을 서 있는 위치에 맞게 설명해 주는 것. 신기방기. 비가 와서 바깥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고, 야경을 보겠다는 계획도 달성한 셈이다.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역사, 분단, 통일 등 독일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 한 국회의사당의 변천 모습도 전시되어 있고, 그 아래쪽 투명 유리로 보이는 회의장 같은 곳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었다. 그야말로 산교육의 현장!
꽤 늦은 시간에다가 비까지 오는데도, 학생들을 포함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사전에 날짜와 시간을 신청할 때 1지망-3지망까지 고르게 되어 있는데, 갑작스런 행사나 보안의 문제로 예약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무료로 이런 투어를 진행한다는 게 여간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닐 텐데도 착착, 갖추어져 있는 시스템에 과연 독일답다 싶었다. 빨리 들여보내 달라는 불만에도, (굳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정 인원이 모여야만 이동해야 하니 사람들이 더 모일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는 융통성 없음도 독일스럽고...!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던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