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 이야기 - 스페인 마드리드

by jose

여행 전반부 독일에서 미술관을 비롯한 실내 활동이 많았다면, 햇살이 반가웠던 스페인에서는 야외를 돌아다니는 일이 더 많았다. 하여, 스페인에서 방문했던 미술관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단 두 곳. 레이나 소피아는 한국어 번역, 풀 네임으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라고도 불린다.


10년 전 독일 교환학생 시절에 같은 어학원에 다녔던 일본인 친구랑 스페인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바르셀로나-마드리드-세비야 이렇게 후다닥 다녀왔었는데, 그래도 유명세를 따라 두 곳 모두 방문했었다. 얼마나 자세히 오래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고야의 후기작들, 레이나 소피아에서는 역시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다.




프라도 미술관 관람은 마드리드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는 친구 덕을 톡톡히 봤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페인 회화를 소장하고 있고 그 외 이탈리아, 플랑드르, 프랑스, 독일 회화 등 방대한 전시 규모 때문에 모든 작품을 세세히 보는 것은 불가능. 그래도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가이드를 자청해 준 친구의 알찬 설명 덕분에 꼭 봐야 할 작품들을 지나치지 않고 재밌게 둘러볼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이 발견한 화가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였다. 그는 '고독했던 천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1450년경 출생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기 화가이지만, 주로 신성한 성화가 많이 그려졌던 시기에 상상 속 풍경 등을 담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다. 벌레, 괴이한 양서류, 반인반수 등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환상적이고 상상적인 세계로 화폭을 채웠다. 20세기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만큼,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간 천재 화가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1510년경)이라는 3폭으로 구성된 작품이 특히 유명하다.

보스_세속적 쾌락의 동산.jpg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고야의 후기작들은 10년이 지나고 다시 보아도 섬뜩한 인상을 주었다. 고야는 약 60년 이상 화가로 활동했는데, 오래 활동한 만큼 작품 양식도 계속 변화하여 한 가지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화가다. 회화뿐 아니라 판화, 소묘 등을 제작했고, 태피스트리 디자이너로도 일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누드화가 금지됐던 당시에 작품이 발견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궁정화가의 자격도 박탈당하게 했던 <옷 벗은 마하>(1800)와 이후 다시 그린 <옷 입은 마하>(1805)이지만 이보다 나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1821), <모래 늪의 개>(1819~23) 같은 소위 '검은 그림 연작'이었다. 1828년 죽기 직전 몇 년간 그린 작품들인데, 그의 사후에 고야가 살던 집 벽 가득히 이런 검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청력을 잃었던 고야가 죽음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견뎠던 고독과 절망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들을_먹어치우는_사투르누스(검은그림.jpg
모래 늪의 개.jpg
프란시스코 고야, '검은 그림'


두 작가 외에도 그 유명한 <시녀들>(1656년경), <바쿠스의 축제>(1628~29년경) 등을 그린 벨라스케스와 라파엘로의 초상화나 성화, 엘 그레코,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들도 둘러보고 나왔다.



레이나 소피아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갈지 말지 망설이다 그래도 <게르니카>(1937)를 한 번 더 보자, 라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스페인 프랑코 내전 시기이자 독일 나치즘 시기, 독일 폭격기가 스페인 바스코 지역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폭탄을 떨어뜨린 사건이 있었다. 전투기를 이용한 폭탄 투하나 공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여서 스페인 내전 당시만 해도 비행기로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게르니카는 이틀 내내 불탔고 1,5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프랑코 정권을 돕는다는 명분이지만, 히틀러가 무기 실험을 한 것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가 사건 직후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게르니카>이고 이 작품은 파리 만국박람회 때 공개되었다.

KakaoTalk_20180625_220915056.jpg
KakaoTalk_20180625_220917600.jpg


10년 전,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 잘 몰랐다가 알게 되면서 처음 <게르니카>를 봤을 때는 엄청 충격도 받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람도 너무 많고 조급한 마음 때문에 같은 감흥이 일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옆에 작게 전시되어 있는 게르니카 스케치를 보는 게 흥미로웠다. 어쨌든,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작품을 통해 되새겨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시간이다.

KakaoTalk_20180625_220917938.jpg
KakaoTalk_20180625_220918670.jpg
멜리에스의 푸티지와 만 레이의 작품


그 외에도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 푸티지, 리처드 세라의 '강철(!)' 조각상들, 만 레이의 작품,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0층부터 4층까지 전시실이 쭉 있는데 시간이 없어 두 층 정도만 급하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유명세 때문인지 입장료가 꽤 비싸다. 성인 기준 프라도 미술관은 15유로, 레이나 소피아는 10유로. 프라도 미술관은 입장 시 보안검사가 있고, 사진 촬영은 프라도 미술관은 금지, 레이나 소피아는 부분적으로만 가능하니(피카소 작품은 당연히 안되고, 가능한 작품도 플래시는 금지다) 참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박물관·미술관 이야기 -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