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온, 독일 브레멘에서

- 모두 잘 지내고 있기를!

by jose

10년 전인 2008년 1월 말, 약 10개월 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독일을 떠나는 아쉬움 반, 그리웠던 한국으로 가는 설렘 반, 그 중간의 감정으로.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당시 대학교 4학년으로 복학한 나는 독일과 비교해 너무나도 빠른 한국의 삶의 속도와 당면한 진로 문제로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의 전환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한참을 갈팡질팡하며 보냈던 것 같다.


그런 불안정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브레멘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과의 연락이 하나 둘 끊기기 시작했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향수병을 잊게 해줬던 룸메이트, 어학원을 함께 다니며 친해져서 집에 초대도 하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곤 했던 친구들, 브레멘에 살고 있는 몇몇 한국 분들, 언어교환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 되어 친해진 친구와 너무 귀여웠던 그의 딸아이 등등.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연락을 위해선 이메일이나 스카이프를 이용해야 했고, 한동안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그마저 드문드문해지고, 당시 사용하던 hot 메일이 없어지면서 거의 연락이 끊긴 거다. 가장 친했던 룸메이트와는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났는데, 계정이 바뀌고 하면서 그마저도 연락이 끊겼다.


한동안 잊고 있었고 가끔 생각이 나긴 했지만 각자 잘 살고 있겠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번 여행에서 브레멘에 짧게 머물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너무나도 먹먹해지는 거였다.




베를린을 떠나 다음 여행지인 브레멘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시내로 나가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10년의 세월 동안 도시가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을 테지만, 여긴 주변 상점들이 바뀐 것 말고는 거의 그대로의 모습이다.

IMGP0142.JPG
KakaoTalk_20181009_231237692.jpg
2008년 브레멘(좌)과 2018년 브레멘(우)


시청 광장을 지나 브레멘 대성당인 St.Petri Dom에 들어서자, '10년 만에 내가 이 도시에, 이 성당에 다시 오다니!' 감격스러움이 밀려온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공간과 일렁이는 촛불 등이 그런 감정을 북돋았겠지만, 예상치 못한 벅찬 감정이 마음을 간질였다. 더구나, 10년 전에는 내 삶에 없던 이와 함께 이곳에 있다는 게, 무언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21841521.jpg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22121346.jpg
St. Petri Dom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31238879.jpg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31239503.jpg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31238285.jpg
시청광장과 브레멘 음악대 동상


시청 광장 옆 아기자기한 물품들을 파는 가게나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역사가 오랜 도시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10년 전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왔던 카페가 그대로 있는 반면,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바뀐 것인지, 생소한 곳도 많았다.


산책하러, 특별한 날 맛있는 걸 먹으러, 감정을 다잡으려 자주 갔던 베저강 옆 슐락테(schlachte)는 추위와 흐린 날씨 때문에 아쉬웠지만 반가웠고, 레스토랑에서의 진정한 독일식 저녁은 추운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25259014.jpg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25258144.jpg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25300119.jpg
아기자기한 골목(Schnoorviertel)과 베저강 옆 슐락테(Schlachte)


다음 날에는 브레멘 대학교로 향했다. 여전히 춥긴 했지만 다행히 해가 나서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주변과 가는 길이 바로 생각날 줄 알았는데, 트램 내리는 곳이 헷갈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걸어간다. 아, 이렇게 잊을 수 있나. 내 기억력을 너무 믿었다. 그래도 학교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직 개강 전이라 한산한 대학교를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익숙하면서도, 어색하다. 그 낯섦이 또 낯설다.


브레멘 대학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녔던 뷔르거 파크(bürgerpark)를 향해서 걷는다. 맑은 날씨 덕에 너른 공원과 크고 작은 나무, 호수, 집, 자연의 소리와 고요함이 마음을 맑고 편안하게 한다. 이 공원의 끝 어디쯤을 지나 조금만 가면 내가 지내던 기숙사일텐데... 방향조차 모르겠다.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31242493.jpg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31243523.jpg
브레멘 대학교와 뷔르거파크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라 공원을 지나 짐을 찾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시간이 넉넉지는 않아서 서둘렀는데, 기차 연착. 그래도 다른 곳에 갈 수는 없어서 기차역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쉬움이 밀려오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첫 번째로는, 너무 짧게 일정을 잡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1박 2일 동안 주요하게 갈 곳들을 둘러보고 나니 내가 살았던 기숙사, 많은 친구들을 만났던 어학원 등 '여행지'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했던 지역까지 가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더 슬펐던 건, 다시 브레멘에 오면 생활하던 그 길들이 그냥 다 떠오를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기억을 더듬어 트램과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가 보았을 테지만 그럴 시간까지는 없고, 그렇다고 단번에 가는 길이 생각나지는 않아서 결국 포기. 애초에 굳이 가려고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지만, 막상 그렇게 브레멘을 떠나려고 하니 집 앞 좁은 골목, 오가던 길 등등이 순간 너무너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IMGP1177.JPG
IMGP0099.JPG
2008년의 뷔르거 파크와 집 앞 도로


그러면서, 친구들이 마구 떠올랐다. 마치 기숙사 앞에 가면 그때 룸메이트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10년이면 이 도시에서 만났던 모두가 여기에 없을 수도 있는데, 혹시나 하면서 자꾸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왜 그 인연들을 지금까지 소중히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와 아쉬움. 마음이 복잡했다.


다음 여행지인 슈투트가르트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도 한동안 브레멘이 그리워 못 견디겠다. 내가 다시, 브레멘에 올 수 있을까. 고작 10개월이었지만 너무 많은 추억이 집약되어 있는 그곳. 오래 잊고 있었고 그저 다시 가는 것이 신기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도 떠나는 길이 먹먹할 줄이야.

수정됨_KakaoTalk_20181009_231246127.jpg 안녕, 다시 보자! 브레멘 중앙역





이 여행이 약 6개월 전인데도,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이 또 한 번 저릿하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연락처를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이래저래 쉽지 않다. 페이스북에서 찾으려 해도 이름은 생각이 나도 성까지는 생각이 안 나서 찾기가 어렵고. 한편으론 끈질기게 찾아내어 연락을 한다 해도, 정작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모두는 아니어도, 몇몇은 정말 다시 보고 싶다. 다들 잘 지내고 있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스페인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