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고양이 키우라"며 한사코 고양이 집사가 되기를 강요하곤 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임신을 하더니, “너도 아기 가져라. 같이 키우자 제발~”이라며, 무슨 아기가 애완동물쯤 되는 듯이 또 졸라댔다.
내가 크게 반응이 없자, 무언의 압력인지 뭔지, 6월이었던 내 생일에 책 한 권을 선물로 주는 거였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이라는 책을.
웹툰 작가인 필자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긴 일들, 마음, 감정 등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인데, 친구가 읽고 좋다며 나에게도 선물을 한 것이다.
일상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일, 임신과 출산, 육아. 그로 인한 수많은 감정, 배움의 이야기가 과장하지 않는 담담한 필체와 따뜻한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뭉클하고 진솔했다. 같이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내게 가장 오래도록 기억된 내용은 임신이나 육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어떤 내용이 아니라 바로, 이거였다.
"아빠, 뉴스는 어른들이 보는 만화영화 같은 거야?"
어릴 때 뉴스를 보며 눈을 빛내던 아빠를 이해해보려 애를 쓴 적이 있다. 문득 돌아보니 나를 비롯한 주변인 모두가 뉴스를 보는 어른이 되어 있다. 다들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대출도 받고 고깃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 후보가 어떠니 이 정당이 어떠니 어제 본 만화영화 이야기하듯 토론을 한다. 막상 그런 평범해 보이는 어른이 되어보니, '평범하다'는 단어로 간단히 압축할 수 없는 엄청난 디테일들이 각자의 삶에 있는 거였다.
다들 만화 같은 부분을 하나씩은 가지고 산다.
- 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中에서
필자가 말한 평범함의 지표가 완전하게 와 닿지는 않지만 한 가지만은 꼭 마음에 들었다. 평범함 속에 들어 있는 엄청난 디테일.
세상의 대부분인 평범한, 평범해 보이는 우리지만, 우리 각자는 그 평범함 속에서 약간의 틈을 찢고, 간극을 만들고, 옆으로 삐져나가기도 하면서, 혹은 그 평범함을 유지하고자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각자의 세계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
친구의 선물을 받고 얼마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마저 다 읽었을 때쯤엔 아이가 제대로 오지도 않고 떠나버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나 더욱 빨리 헤어져야 했다. 작년 여름의 일. 하지만 근 한 달간 한여름의 폭염처럼 내 삶을 훑고 지나간 이 일도, 계절과 함께 다시금 일상의 평범함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때도 지금도, 예나 지금이나, 나는 뭉뚱그려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 한마디로 퉁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 내 삶에 더해진 것이리라. 돌이켜보면 세상이 무너질 만큼 그렇게 큰 일은 또 아니지만 그 이전과 이후는 다르므로. 적어도 어떤 지점에서는 전과 같은 내가 될 수 없으므로.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며, 그렇지만 또 다르게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일상의 디테일을 쌓아간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 단어 하나로 퉁 칠 수 없는 일상의 디테일들을, 상황을, 감정을, 개인의 작은 '역사'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의, '평범의 디테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