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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Apr 21. 2019

겨울을 지나 다시, 봄날의 꾸러미

- 밀린 꾸러미 일기!

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매달 농작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키우고 있고요.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꾸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삶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작년 7-8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홍성에서 친구가 보내주는 농산물 꾸러미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못했다. 10월 경부터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한 일거리들이 점점 불어나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 연말과 연초를 보냈다. 짧은 가을을 지나, 긴장했던 것보다는 춥지 않았던 긴 겨울을 또 지나고, 벚꽃마저도 다 떨어진 봄이 되었다. 벌써 세 개의 계절이 지나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다시 이야기를 풀어봐야 할 것 같다.





가을, 겨울의 꾸러미

슬슬 겨울을 준비하는 9월부터 11월까지 세 번의 꾸러미가 더 도착했다. 9-10월에는 가을답게 옥수수, 단호박, 호박잎, 가지, 밤, 풋팥 등의 작물들이 도착했고, 11월에는 배추, 메주콩, 쪽파, 대파 등 겨울을 준비하는 작물들을 만났다. 

상자를 열어 종이봉투에 꼼꼼히 담겨져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따듯하고 풍족한 기분이 들다가도 이걸 어떻게 다 해 먹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요리 베테랑도 아니라서 하나하나 만드는 데 공이 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호박잎 같은 풀 종류의 작물은 더욱 그런데, 바로 해 먹지 않으면 잎이 누렇게 변하기 때문에 빨리 먹거나 아니면 데쳐서 냉동보관해야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호박잎을 많이 버리고 말았다. 


우리 집 옥상 텃밭에서 작은 가지 하나를 수확하는 만족해야 했던 터라, 오동통 큼지막한 가지는 특히 반가웠다. 이렇게 자랄 있는거구나. 토양과 환경, 인간의 정성 같은 많은 요소들이 모이고 뭉쳐 이 보랏빛의 몸체를 단단히 했을터다. 어렸을 때는 먹지도 않았는데, 가지의 맛을 알게 된 건 어른이 된 증거일까. :)



낯선 작물들은 아닌데 유독 맛있었던 쪽파무침과 배춧잎을 넣은 된장찌개. 쪽파의 향과 새콤한 양념, 고소한 참기름까지 더해지니 풍미가 가득했다. 배춧잎은 보드랍고 달았다. 겨울이 왔다. 



2018년 갈무리의 날

4월을 시작으로 어느새 2018년 꾸러미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꾸러미를 보내주는 친구가 갈무리 자리를 마련했다. 나를 포함해 꾸러미를 받았던 3명과 친구까지, 총 4명이 성북에 있는 찻집 '희섬정'에 모였다. 각자 준비한 한 가지씩의 음식을 들고서. 

희섬정에서의 만남/단팥죽과 당근샐러드, 월남쌈 냠냠.


꾸러미 프로젝트를 통해서 한 해동안 충족했던 욕구들, 혹은 채우지 못한 욕구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따듯한 시간을 보냈다. 낯설지만 낯설지만은 않았던 시간. 



다시, 봄이 오다 멈춘 19년 3월 어느 날에 

다시 '희섬정'에 모였다/더 많아진 음식들 :)


데칼코마니처럼, 2019년이 되어 다시 '희섬정'에 모였다. 이번에는 7명의 사람들과 함께. 올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만남의 자리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요란한 우박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작년 말 갈무리하면서 이야기 나눈 것처럼, 올해 꾸러미를 통해 이루고 싶은 각자의 욕구나 기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역시 하나씩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하나 둘, 꺼내놓으니 잔칫상이 따로 없다. 아, 나누어 먹는 것, 참 좋은 것이었지.



2019년 봄날의 꾸러미 

3월과 4월, 벌써 두 번의 꾸러미가 도착했다. 봄 하면 떠오르는 냉이와 쑥부터, 돼지감자, 헤어리베치, 민들레잎, 소리쟁이 등등 봄채소 위주로 꾸려진 상자를 보니, 정말 봄이구나! 싶다. 따듯한 봄기운이 상자에 함께 담겨왔다.

냉장고에 있던 은행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껍질을 까서 넣고, 말린 가지, 냉이와 함께 밥을 지었다. 남은 냉이로는 냉이무침을 했다. 밥에는 점성이 생겨서 쫄깃하고, 향긋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오랜만이다. 집에서 좋은 재료로 밥을 지어먹는 여유를 갖는 것이 말이다. 



돼지감자는 생으로 먹기에는 입맛에 잘 안 맞아서 실온에 말려서 차로 마시고 있고, 말린 채로 그냥 먹으면 '건강과자' 느낌도 난다. 헤어리베치는 데쳐서 김밥에 시금치 대신 넣었더니 맛과 향이 좋다. 김밥은 언제나 진리다. 





아... 거의 6개월 밀린 이야기를 하려니, 개학 전 방학숙제하는 것처럼 숨 가쁘다. 4월 꾸러미는 '실패'의 이야기도 있고 아직 사용하지 못한 작물도 있어서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나가야겠다. 앞으론 이번처럼 몰아서 쓰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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