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매달 농작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키우고 있고요.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꾸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삶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싸늘한 날씨에 유난히도 무덥던 올여름을 벌써 까먹으려고 한다. 조만간 너무너무 추워지면 이 지독했던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까.
조금 늦었지만 7·8월의 꾸러미 이야기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려고 한다.
감자 회동 후 받아 든 꾸러미 중 메인은 당연히 감자였다. 홍성에서 실컷 먹었으니 주변에 나누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또 그렇게 되진 못했다. 알이 작은 것들은 카레에 껍질째 통으로 집어넣었더니 맞춤한 재료가 되었고, 나머지는 평범하게 쪄서 먹었다. 감자가 간편한 음식 같고 크기도 작아서 여러 개 먹을 것 같지만, 막상 먹으면 두세 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든다.
원래 11월에 심었어야 하는 양파를 심지 못한 친구가 양파를 모종 채로 보내주었는데, 크기는 작아도 맛은 뒤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토끼가 찾아올 것 같은 생김새의 당근을 썰어 함께 넣고 소시지야채볶음을 만드니 맛난 밥반찬이 됐다.
홍성에서도 맛있게 먹은, 열매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오디잼은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고 요거트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 매년 이맘때 꼭 다시 만들어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다. 여름이 시작되면, 생각나겠지.
유난스러웠던 폭염 탓에 홍성에서도 채소들이 맥을 못 춘 모양이다. 친구는 생각만큼 여름 채소를 충분히 보내주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토마토, 당근(좀 더 자랐다), 파슬리와 바질, 뽕잎차까지, 나로서는 부족하다 느껴지지 않았다.
더위가 심했던 게 원인이 되었을까. 토마토가 너무너무 달았다! 초록색을 띤 토마토는 덜 익은 게 아니라 원래 저런 빛깔을 띤 "블랙체리토마토"라고 하고, 빨간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방울토마토"다. 시원하게 해서 생으로 먹어도 좋고, 당근, 양배추, 복숭아 등과 함께 샐러드로 먹어도 좋다. 당근은 샐러드 외에 생으로도 먹고 도토리 묵무침에도 넣어 먹고 쓰임새가 많다.
감자 회동 때 홍성에서 먹었던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 도전해 보았는데 대성공! 만들어서 냉장고에 차게 해 두고 먹으니 최고였다. 비스킷 위에 마요네즈, 양파로 버무린 참치와 토마토를 올려 카나페도 만들었다. 파슬리와 바질은 파스타에 넣으니 모양도 향도 좋다. 이전에 포스팅한 환삼덩굴로 만든 페스토(https://brunch.co.kr/@j-zoom/31)를 파스타 소스로 넣었는데 그 맛이 일품-!
이 날... 와인 한 병에 맥주 몇 캔을 깠다고...
감자, 당근, 토마토 등은 평소 많이 보던 작물들이라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무언가 만들려고 하면 '아, 이 재료도 넣으면 되겠다' 하면서 그 쓰임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별다른 요리 없이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도 좋다. 반면 파슬리나 바질, 오디잼 같은,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하는 재료들은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게 해 주어서 재밌었고 그러면서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 집 옥상 텃밭 소식도 잠시. 위에 포스팅 한 토마토 샐러드에는 옥상 텃밭에서 따온 방울토마토도 일부 들어있다. 알맹이는 작지만 역시나 매우 달다. 고추는 흉년인 반면, 케일은 너무 풍년이라 다 따 먹기도 힘이 들 정도. 무엇보다 특별했던 건 키만 크고 잎만 커지던 가지에 꽃이 피고 드디어 열매가 하나 열렸다. 역시 알맹이가 작지만... 그래도 내겐 큰 수확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더위를 견디고 홍성에서, 그리고 우리 집 옥상에서(^^) 내게 와 준 요 아이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