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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n 13. 2018

5월의 채소꾸러미

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매달 농작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키우고 있고요.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꾸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삶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할 때면 루트에 꼭 집어넣는 곳이 있다. 바로, 시장! 

중고물건이나 안 쓰는 물건 등을 파는 벼룩시장부터 농산물이나 가공식품 등을 파는 지역시장까지 다양하다. 나에게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지역 특유의 것들을, 판매자와 직접 연결되어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장점이다. 거기에 하나씩 다 맛보고 싶은 간식도 많고(시장 음식들을 모아 '시장 뷔페' 같은 걸 만들면 넘나 좋을 것 같다!), 종종 음악이나 춤 공연 등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마트처럼 딱딱 아주 잘 정돈되어 있지 않고 그게 불편한 점이 될 수 있지만, 각 상점들이 각각의 개성과 자부심을 뽐내며 있을 수 있다는 게 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대화하는 농부시장"


채소꾸러미를 전해줄 친구가 성수동에서 열리는 마르쉐@에 온다고 해서, 5월 꾸러미를 받으러 성수 언더스탠드애비뉴로 향했다. 마르쉐는 프랑스어로 '시장', '장터'라는 뜻이라고 한다.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모여 장터를 열고, 소비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각종 작물과 요리 등을 이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2012년 혜화에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마르쉐@혜화, 마르쉐@성수가 운영되고 있고, 조만간 문화비축기지에서도 열리는 듯하다. 연간 일정 및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http://www.marcheat.net/). 



돼지감자순/뽕잎순/솎은당근/래디쉬/환삼덩굴/민트


5월의 꾸러미는 4월에 받은 꾸러미의 거의 2배의 가짓수다. 솎은 당근과 래디쉬의 색깔과 자태, 민트와 쑥차 향에 감탄하면서도, 솎은 당근, 래디쉬는 물론 뽕잎순, 돼지감자순, 환삼덩굴... 한 번도 요리해본 적 없는 채소들이라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도 된다. 친구가 꾸러미 설명을 해주면서 활용할 수 있는 요리 힌트를 주어서 주의 깊게 듣고 머릿속에 메모! 자칫 게으름을 피우다 채소들이 상해버릴지 모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 뽕잎순, 돼지감자순으로 나물볶음 / 상추는 무침

4월에 받았던  개망초, 머위, 쇠별꽃, 헤어리베치는 데쳐서 바로 무쳐먹었다면, 이번에는 들기름, 간장, 다진마늘, 깨를 넣고 불에 볶았다. 둘 다 향이 강한 편인데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니 넘나 맛있는 것...! 사실 비빔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꾸러미로 나물을 해 먹으면서 비빔밥의 맛에 눈을 뜬 것 같다. 

귀여운 상추는 열을 가하지 않고 간장, 액젓, 매실, 고춧가루, 깨 등을 넣고 조물조물 겉절이처럼 무쳤다. 약간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남편 작품. 매콤새콤하다. 



□ 솎은 당근과 래디쉬로 만든 피클 

귀여운 재료의 생김새도 그렇고, 활용한 결과물도 그렇고, 이번 꾸러미의 하이라이트(!)는 요게 아닐까 싶다. 피클이나 물김치, 겉절이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난생 처음으로 피클에 도전해 보았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피클링 스파이스' 같은 처음 들어보는 재료에, 월계수잎, 계피를 통째로 넣으라고도 쓰여 있고... 복잡해 보였다. 근데 막상 해보니 별로 어려운 건 없었다. 마트에 가니 피클링 스파이스, 월계수잎 같은 재료도 자그마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계피는 빼고 피클링 스파이스, 월계수잎, 식초, 설탕, 소금만으로 피클물을 완성하고, 당근과 래디쉬를 송송 썰어 피클물에 몇 일 담가두었더니, 래디쉬의 붉은색이 배어 나와 예쁜 피클이 됐다. 피클물이 남아 오이와 양배추, 파프리카로도 피클을 한 통 만들어서 둘이 짝꿍이 됐다. 



□ 환삼덩굴로 페스토 

처음엔 '환상'덩굴인 줄 알았다. 어쩐지 아무리 검색을 해도 안 나오더라니... 원래는 쌈을 먹을 때 상추랑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줄기가 뻣뻣하고 거칠어서 잘 손이 안 갔다. 

그래서 역시 처음 도전한 페스토 만들기! 페스토 레시피를 찾으면 보통 바질페스토가 많이 나오는데, 바질을 환삼덩굴로 대체하고 나머지 재료들인 잣, 소금, 마늘, 올리브, 파마산 치즈를 믹서로 갈아 완성했다. 점성을 더 묽게 하고 싶으면 올리브를 좀 더 첨가하면 된다. 


□ 민트와 쑥차

그 외, 민트와 쑥차는 따로 가공하지 않고 과일주스 데코로, 따듯한 차로 우려 각각 활용했다. 민트향이 이렇게 좋았었는지, 아니면 친구가 재배한 민트가 유난히 그랬는지 향긋한 내음이 솨앙, 기분을 좋게 한다. 쑥향도 못지않게 좋은데, 민트가 톡 쏘는 향긋함이 있다면 쑥은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가짓수가 많아 꽤 많은 요리를 했다. 대부분 처음 다루는 재료로 처음 해보는 요리들. 부지런을 좀 떨어야 하긴 하지만 새로운 재료와 음식을 접해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좀 더 연마가 되어, 주위에 나눌 수도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꽤 오랜만에 보는 친구 얼굴이 건강해 보이고 또 기운이 가득한 것 같아, 그 모습을 거울 삼아 나의 생활을 한 번 비춰봤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고 왜인지 만족이 없는 요즘인데, 뭘 하고 있든 나도 건강한 기운, 에너지를 풍길 수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몸과 생각, 마음이 좀 더 건강히 깨어있도록 가꾸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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