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작물들로 분주했습니다.
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매달 농작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키우고 있고요.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꾸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삶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본격 여름이 오기 전, 4-5월의 봄채소들을 소진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인 만큼 푸르름이 시작되는 작물들이 많이도 도착했고, 조금만 지나면 이내 노랗게 변해버리는 잎들 때문에 손과 마음이 분주했다.
문제는 분주한 탓에 실수와 실패작들이 있었고, 그것이 왠지 모를 짜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모르는 작물을 보고 만지고 맛보는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일이 종종 의무로 다가오는데, 또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박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어렵다. 언제나 균형을 맞추는 일은.
4-5월은 봄의 기운이 가득한 작물들로 꾸러미가 채워졌다. 봄 하면 떠오르는 쑥을 비롯해서, 민들레, 헤어리베치, 소리쟁이, 환삼덩굴, 뽕잎순, 래디쉬, 마조람, 머위 등등.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이들도 꽤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만도 꽤 애를 먹었다.
오잉, 이게 무슨 비주얼이냐...... 먼저 실패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이번에 쑥이 오면 꼭 쑥버무리를 만들려고 벼르고 있던 터였는데, 결과는 대실패...! 마트에 멥쌀가루가 없어서 직접 쌀을 불려 믹서기에 갈았는데, 입자가 굵어 쪄도 쪄도 쌀알은 익지 않았고, 달짝한 맛도 없고, 어쩌다 냄비도 태워버리고 말았다. 허둥지둥, 어찌나 화가 나던지.
멥쌀을 사용하려면 아주 곱게 갈아야하고, 아니면 멥쌀 말고 찹쌀가루로 해도 된다고 하니,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다음엔 성공할 수 있겠지...
민들레를 먹는다는 건 처음 알았다. 당근, 사과를 추가해서 고춧가루로 무치고 비빔국수에 얹어먹으니 열무김치 느낌도 나고 꽤나 감칠맛이 났다. 약간 씁쓸한 맛이 있어 무침만으로 먹기보다는 국수 위에 얹어 먹는 게 좋은 선택이었다.
환삼덩굴, 헤어리베치는 김밥에 시금치 대용으로 훌륭한 재료가 된다.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참치, 맛살, 햄 등을 넣고 돌돌 말으면 맛있는 한 끼. 김밥은 만들기 어렵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그래도 실패할 일이 별로 없으니 한 번씩 손을 걷어붙이게 된다. 밖에서 먹는 김밥이랑은 뭔가 확실히 다르다.
빨간무 래디쉬와 마조람은 피클로 만들었다. 물에 설탕, 식초, 소금, 피클링스파이스, 월계수잎, 후추를 넣고 팔팔 끓이면 피클 물이 되고, 소독한 병에 래디쉬와 마조람을 잘라 넣고 물을 부어주면 끝. 래디쉬의 빨간색이 물 전체로 스며든다. 생전 처음 본 '소리쟁이'라는 아이는 된장찌개 재료로 맞춤.
+ 옥상 텃밭 소식.
겨울을 넘기고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텃밭을 키우고 있는데, 흙이 좋아진 건지 적절히 비가 내려주어서인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상추, 겨자, 케일 등 쌈채소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눔도 하고, 방울토마토는 방울방울 달려 빨갛게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에 겨우 하나 달렸던 가지도 올해는 쭉쭉 크고 있고.
한 가지, 배추벌레와 빨간 개미 같은 애들이 잎들을 열심히 갉아먹고 있어 난감했다. 어차피 다 소비하지는 못할 테니 너희도 같이 먹고살자, 라는 마음이었는데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마요네즈를 물에 섞은 천연 살충제를 만들어 잎 구석구석 뿌려두었다. 배추벌레까지는 아니어도 빨간 개미 같은 작은 벌레들은 어느 정도 없어진 것 같다. 그래, 어느 정도는 상납해 줄게!
아... 풍성하면 너그러워지는구나... "부자니까 착한 거"구나...?! (갑자기 분위기 <기생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