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매달 농작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키우고 있고요.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꾸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삶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올해는 여름이 조금 늦게 오려나보다, 하며 좋아하던 중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추위보다 더위에 강한 편이지만 작년 여름의 무더위는 상상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올해는 7월 초가 되어도 참을만한 낮의 더위와 금세 선선해지는 저녁 바람에 의아하기까지 했다.
올해 더위가 조금 늦게 왔다고 느끼는 이유는 잦은 비 때문인 것 같다. 큰 비가 오거나 장마가 길게 온 것은 아니지만 더워질 것 같으면 한 번씩 비를 뿌려주어 다시 시원해지기를 반복했다(통계적으로는 틀릴지 몰라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그리고 시작된 본격적 여름!
본격, 여름이 찾아온 옥상
1년 사이 비옥해진 흙과 잦은 비(+비 안 올 땐 부지런히 물을 잘 준 것도 있다), 그리고 뜨거워진 태양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결과.
수확하는 데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특히 텃밭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한 방울토마토는 붉은빛을 더해가며 익어가고 있고, 작년에 고작 1개 열린 가지도 오동통 4개째 수확을 했다. 어쩐지 마음을 쓰는 만큼 보답을 주는 것 같아 고맙다. 삶에서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데 말이야.
여름엔 역시 차게 먹는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제격! 작년에 처음 맛을 본 후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도 계속 만들어 먹고 있다. 보통은 토마토를 삶아서 껍질을 까라고 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괜찮을 것 같아서 그냥 껍질째로 만들었다. 부드러운 감이 덜하긴 하지만 맛에는 크게 지장 없는 것 같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살짝 구운 뒤 양념장을 올려 먹는 가지구이는 진심 풍미가 가득했다. 가지볶음이랑은 또 다른, 가지 본연의 맛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다.
불발된 홍성행, 대신 희섬정에서
6월은 감자 캐는 철이라 꾸러미를 보내주는 친구네 집 홍성에서 감자도 캐고 음식도 해 먹으려는 회동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비 예보. 꾸러미를 보내주는 친구가 급히 계획을 수정, 서울 희섬정 찻집에서 다시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음식들과 함께. 고기양념장(<강식당>에서 나온 레시피라고...!)과 야채를 듬뿍 넣은 비빔국수와 햇감자오븐구이, 찐감자, 유부초밥에 후식으로 살구케이크와 녹차소주, 베트남커피까지. 요리 스페셜리스트가 많아 이 곳에 올 때마다 입호강이다. 언제나 기대를 뛰어넘는 상차림. (내가 준비해 간 유부초밥이 젤 '쩌리'였다고...)
올해 지금까지 꾸러미를 통해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욕구들, 시행착오 등등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서, 못 이룬 홍성 여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이걸로도, 사실은, 충분하다.
완두콩의 재발견
자장면 위에 올라간 것 말고 완두콩을 딱히 먹어본 적이 있었을까. 6월에 도착한 꾸러미는 그야말로 "완두콩의 재발견"이었다. 완두콩은 따서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다 하여, 받은 날 끓는 물에 후딱 삶아 먹었는데, 달-콤. 어라, 완두콩이 왜 달지? 소금만으로 간을 해 "에다마메"를 만들어 안주나 간식으로 먹어도 좋다. 꼬투리 안에 나란히 정렬해 있는 모양도 귀엽고, 맛도 담백, 고소, 달콤. 최고였다.
본격 여름이 시작된 7월 꾸러미는 주홍 당근과 (값이 폭락해 걱정인) 양파, 메주콩 등이다. 양파, 감자, 당근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카레는 언제 해도 맛없기 힘들다. 재료도 좋으니 매번 쉽고 맛있게 먹는다.
2년째 꾸러미를 받다 보니 나름 이 계절이 되면 생각나는 작물들이 있다. 토마토, 감자, 당근, 거기에 올해는 완두콩과 가지까지 추가. 하나하나 만들고 맛보는 경험이 늘어가는 게, 스스로 그 경험을 늘려가는 게,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