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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27. 2020

추워져도 먹을 건 먹어야지

- 2019년 가을 겨울의 꾸러미

홍성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매달 농작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옥상에서는 작은 텃밭을 키우고 있고요.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꾸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삶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작년 여름이 지나고 나서는 텃밭도 꾸러미도 시들해졌다. 여름 내 왕성하게 열매를 맺던 텃밭 식물들도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나 둘 갈무리가 되고 있었고, 뜨거운 햇볕을 함께 쬐며 물을 주는 횟수도, 열매를 따러 옥상에 올라가는 횟수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친구의 꾸러미로 음식을 해 먹는 것도 마찬가지.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바쁘기 마련이고, 초심은 잃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나에게 취약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너지가 떨어져 가는 계절.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홍성으로부터 도착하는 꾸러미는 몸은 분주하지만 마음은 가난해지곤 하는 가을, 겨울에 온기를 준다.

수많은 이웃과 친구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한 햅쌀과 가뭄에도 죽지 않고 열매를 맺은 고구마, 당근, 배추 등의 작물 외에도 긴병꽃풀이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만든 연고, 로즈마리, 마조람을 말려 소금과 섞은 허브 솔트 등이 차분히 담겨있다. 상자를 열 때마다 한 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 꾸러미를 위해 수고했을 친구를 생각한다.


그래도 부지런히 음식을 해 먹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호박잎, 깻잎, 콩잎 같은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에 색이 변하고 말아서 더욱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호박잎은 데쳐서 쌈으로, 깻잎과 콩잎은 간장 베이스 양념장에 재워 두고 장아찌로 먹는다. 장아찌는 두고두고 먹어도 되니 냉장고도 든든하고 버릴 걱정도 없어서 좋다. 말린 차조기잎은 차로 금세 마셨다.




<리틀 포레스트>(2018)

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에는 먹음직한 음식이 정말정말 많이 나온다. 고향에 내려온 혜원(김태리)이 겨우내 집에 머물면서 해 먹는 음식의 목록은 직접 담근 막걸리부터 밤조림, 꽃잎 얹은 파스타, 떡볶이, 심지어 떡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음식들은 차마 내 요리 실력으로는 해 볼 수 없을 난이도지만, 한 가지 가능하겠다 싶었던 건 겨울배추를 뽑아 잎을 하나하나 떼고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 낸 배추튀김.


튀김 아니고 배추전이라서 영화 속 아삭바삭한 식감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겨울을 이겨낸 배추의 달코롬한 맛이 너무 맛있었다. 같은 배추를 넣은 배추된장국과 같이 먹으니 금상첨화. 다른 음식, 반찬 없이 저 둘로 한 끼 뚝딱했다.


같이 보내준 쪽파로는 상큼쌉싸름한 쪽파무침. 쎈 양념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무침류는 맨밥에 먹기보다는 삼겹살 같은 좀 느끼할 수 있는 고기류 음식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모든 음식과 함께  햅쌀과 각종 콩들. 토종벼인 조동지, 풋팥, 선비잡이콩, 아주까리밤콩, 푸른밤콩 등등,  구별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콩들이 밥에 풍미를 더해준다.




텃밭에서 기른 귀엽고 노란 파프리카 / 홍성에서 온 독특한 모양의 콜라비


본격 겨울이 온 후로는 텃밭과도 꾸러미와도 잠시 작별이다. 그 사이 땅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영양분을 보충하고 내년을 준비할 것이다.


2020년 올해의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 나도 다시 에너지를 충전해야겠다. 올해는 부디 해가 갈수록 힘이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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