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se Nov 01. 2019

카메라 밖이 궁금하세요?

-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초반 37분이 미심쩍어도 믿고 버티시라. 올해 최고의 코미디영화" 작년 8월에 개봉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 대한 씨네21 임수연 기자의 한줄평(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52898)이다. 이 외에도 이 영화에 대한 많은 리뷰는 초반 30분만 참으라고 말하고 있다. 작년 영화가 개봉했을 때 SNS 상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며 호평받았던 영화. 봐야지, 봐야지 미뤄두다가 드디어 이 사랑스런 영화를 보게 됐다. 물론, 초반 30분은 정말 참아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본다면 보상받을 것이다.


Chapter 1. ONE CUT OF THE DEAD

초반 30분, 정확히 37분은 폐건물 안 좀비영화 촬영 현장에 갑자기 진짜 좀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난장, 추격전이다. 누가 봐도 가짜 같은 잘린 팔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은 뛰고 엉키고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다. B급의 조악한 좀비호러물인데, 그보다 더한 문제는 무려 원테이크라는 것. 핸드헬드 카메라로 추격씬까지 같이 뛰면서 찍어놓으니 나중에는 약간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원 컷 오브 더 데드 One Cut of the Dead>라는 제목의 '영화 속 영화'다. 나름의 결말을 짓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잠시 화면 STOP!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봐서 다행이었는지도...)

포스터마저도 B급 감성이다


도대체 이 영화 뭐야? 유료결제한 게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그만 볼 뻔했다. 잠시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고 숨을 고르고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뒷얘기는 어쩌면 그 자체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알고 봐도 재밌을 테지만 아마도 모르는 편이 더 즐거울 테니,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은 먼저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



Chapter 2. 어쩌다가 원테이크 생방송을...  

드디어 영화 속 영화 <원 컷 오브 더 데드>가 끝나고,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찬찬히 설명한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감독 히구라시(하마츠 타카유키)는 개국을 앞둔 케이블 좀비 채널의 첫 번째 작품을 제안받는다. 좀비물인데 무려 원.테.이.크.생.방.송이라는 어마어마한 기획 탓에 “싸게, 빠르게, 퀄리티는 그럭저럭” 찍는 히구라시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다. 처음에 난색을 표하던 그는 아내의 은근한 무시 때문인지 제안을 수락한다.

감독 히구라시의 저 착해빠진 얼굴을 보라 (맨 왼쪽)


배우들과의 대본 리딩 현장과 리허설 현장은 예상대로 난리법석이다. 배우가 진짜 눈물 대신 안약을 넣겠다고 하질 않나, 대본이 이해가 안 된다며 수정을 요구하질 않나, 그 와중에 알콜 중독인 배우, 화장실에 민감한 배우 등등 점입가경의 상황에 감독은 난감해진다.


어찌어찌 준비를 마치고 생방송 당일. 왕년에 배우였던 감독의 아내(슈하마 하루미)와 감독 지망생인 딸 마오(마오)까지 현장에 찾아온다. 생방송 직전부터 펑펑 터지는 사건사고. 이때부터 영화는 '작품'을 만들기보다 '방송'을 펑크내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한다. 생방송이 시작되면서 감독을 비롯한 현장 스태프들, 배우들의 피, 땀, 눈물(?)의 향연이 함께 시작되고, 촬영 현장은 물론 방송국 안에서도 촌각을 다투는 두뇌싸움과 순발력이 가세한다. 극한 상황에서의 환상 콜라보레이션!



Chapter 3. 카메라 밖이 어떤 줄 아세요?

초반 30분을 잘 참고 본 관객이라면 여기부터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좀비영화에서 무언가 어? 이상한데...라고 생각했지만 B급 영화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던 대목대목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스크린 밖의 사투를 보며 절절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웃픈 상황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여기까지도 재밌지만, 사실 이 영화의 압권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방송도 영화도 다 끝난 후에야 만날 수 있는 곳에. 바로 <원 컷 오브 더 데드> 촬영 현장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진짜' 스태프들. 그러니까 '영화 밖의 영화 밖' 스태프들의 모습을 담은 에필로그 영상이다. 영화 속 생방송 현장의 수많은 스태프의 분투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진짜' 스태프들로 연결되는데, 이건 픽션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전쟁터'다.


특히, 영화 설정상 잠시 카메라가 바닥에 눕혀져 있는 몇 초의 시간이 있는데 이때 촬영 감독이 다른 스태프가 가져다준 물을 빠르게 마시고는 다시 카메라를 잡고 냅다 뛰는 장면은 그야말로 탄성을 지르게 하는 장면 중 하나다. 아, 얼마나 고될까! 짠하다... 이건, 봐야 안다!



Epilogue.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일본에서 2개관으로 시작해 입소문으로 전국으로 상영관이 확대되었고 22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입소문을 통해 개봉 후 2만 명 정도의 스코어를 올렸다. 영화학교 워크숍 작품에 제작비가 고작 3천만 원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초초(!) 대박인 셈이다.

 

이 영화는 현장 경험이 있지는 않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떼더라도 충분히 보편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하나하나 차근히 또 성실히 상황을 헤쳐나가고 해결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열정과 조력이 겹겹이 더해진다는 사실.


사람들의 이토록 격하고 낮은 질주가 영화에 생명력을 듬뿍 불어넣어 준다. 부감을 찍기 위한 지미집도 결국엔 인간 피라미드로 해결하는 아날로그적이면서 '공평'한 기운. 그 기운이 여운으로 남는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과 마음의 빈자리 <13년의 공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