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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Dec 08. 2021

‘단조’의 뮤지컬 영화 - <아네트>

'minimal'한 이야기, 'maximal'한 영화


레오 카락스의 전작 <홀리 모터스>(2012)의 정확히 중간 부분에는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장면이 등장한다. 악보 위 'ENTRACTE'라는 글씨에 이어 나오는 행진 장면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드니 라방을 필두로 성당 내부로 보이는 공간을 연주자들이 아코디언, 기타, 드럼, 하모니카 등을 연주하며 걷는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이 원숏에서 인물들의 몸짓과 리듬, 멜로디가 무척 경쾌하고 인상적이었다.


'Entracte' 연극이나 영화 등의 중간 휴식시간, 음악으로 하면 간주곡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사업가, 가정적인 아버지, 광대, 걸인, 암살자, 광인 등등 9가지의 서로 다른 인물이 되는 주인공 오스카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는 마치 '이것은 영화, 그러니까 허구의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을 하듯이 영화의 중간에 이런 장치를 끼워 넣은 것이다. 잠깐 쉬었다 가시죠.


레오 카락스의 9년 만의 신작인 <아네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오프닝에서.

<홀리 모터스>(왼), <아네트>(오)


감독은 미국 밴드 스팍스(Sparks)로부터 스토리라인과 15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받고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영화는 스팍스가  녹음을 하는 녹음실에서 시작하여 이들이 거리로 나가고, 이내 코러스, 배우, 감독과 감독의 딸까지 합류해 행진하는 장면을 원숏으로 따라가며 보여준다. <So May We Start>라는 반복되는 가사, 그리고 행진 이후  배우가 각각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의 오프닝을 통해 이제 영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실상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은 영화임 상기시키고 영화  감독의 대사처럼 주의를 집중시킨다. 연극이나 뮤지컬의 시작과도 닮았다.


<홀리 모터스>에서도, <아네트>에서도 이 장면들은 음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혹은 연극/뮤지컬이라는 예술장르에 대해 환기하게 한다. 환상의 이야기, 음악과 멋진 배우가 함께하는 이야기, 생생한 운동성, 살아 숨 쉬는 느낌, 그것이 '영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네트>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아담 드라이버) 오페라 가수 (마리옹 꼬띠아르) 사랑 - 행복 - 추락 - 불행 - 복수 - 뉘우침의 이야기. 매우 쉽고 전형적인 이야기가 영화의 줄기를 이루지만, 반면 영화의 미장센과 형식은 매우 화려하고 독특하다. 이야기는 'minimal'하게, 나머지는 'maximal'하게.  


'단조' 뮤지컬 영화

영화에서 대부분의 대사는 노래로 전달된다. 영화의 스토리에 딱 부합하는 직접적인 가사의 노래들은 대부분 라이브로 녹음되었고, 그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약간은 거칠고 또 생생한 라이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장조'의 밝은 분위기보다는 주인공의 명과 암, 빛과 어둠을 이미지뿐 아니라 음악으로 표현해 내면서 다소 생소한, '단조'의 뮤지컬 영화를 경험하게 된다.


마리오네트를 캐스팅하다

헨리와 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어린 아기를 캐스팅할 수 없었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실제 아이 대신 마리오네트를 등장시킨 아이디어는 탁월했다. '언캐니'한 마리오네트의 표정과 몸짓이 영화의 분위기와도 매우 잘 어울릴뿐더러, 허구의 이야기, 영화라는 매체를 주지 시키는 데에도 한몫을 한다.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은 CG로 지워냈다고 하는데, 인형을 조종하는 기술이 대단!



그리고...


아담 드라이버가 아담 드라이버했다...!

<결혼 이야기>, <데드  다이>, <패터슨>  너무도 다른 캐릭터를 너무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애정하는 배우 아담 드라이버.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는 굉장하다. (마리옹 꼬띠아르도 좋아하는 배우고 그녀의 연기도 좋지만 아담 드라이버가 워낙 강렬하다)  기묘한 '악역' 무표정한 얼굴로 밀어붙여 해내는 아우라에 압도당하게 되는데, 특히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헨리와 (마리오네트가 아닌) 실제 인물로 등장하는 아네트와의 장면에서는 조금은 ‘신파’적인 이야기를 상쇄시킬 만큼 멋진 연기력을 보여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면, 꼭 빠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떼기 어렵죠. 영화에서 그런 심연에 대한 공감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아주 나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심연'에 대한, '나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의 복잡함은 걷어내고 음악으로, 이미지로, 분위기로 영화의 결을 하나씩 쌓아가는 기묘하고 매력적인 영화.

 

2021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 수상작.





사족. // 출산  처음으로  근처로 와준 친구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품고. 개인적 상황 때문인지 영화를 보면서 마리오네트 아기에게 감정이 이입돼서 (>_<)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가 마음을 찔렀다. 영화 보는  낙인데 개봉 영화들을  놓치고 있어 안타깝지만 하나씩   있는 날이,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날이 오겠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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