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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공 Mar 15. 2023

한계령풀

숨은 보석 같은 존재

  시스템 유지 보수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리스크를 만나곤 한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납기 단축 요청은 꽤 흔했고, 그 외에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어찌 보면 프로젝트의 성공은 많은 리스크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결과라고도 볼 수도 있다.

  수많은 리스크 중에서 아마도 가장 큰 리스크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한 리스크일 것이다.

  프로젝트가 힘들고 고되도 함께 일하는 사람끼리 똘똘 뭉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이 힘들게 하면 정말 답도 없다.


  PL(프로젝트 리더)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기존에 있던 시스템에 외부 시스템과 통신하는 인터페이스 모듈을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된 내용이었다. 부수적으로 외부 시스템과 통신해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존 시스템에 컨트롤하며 집계하는 화면을 구축해야 했다.

  데이터를 주고받는 역할을 하는 인터페이스 모듈이 70% 이상을 차지했기에 이것을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였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외부와 통신해야 했기에 프로젝트 팀원들은 코딩 능력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기술과 보안, 성능 튜닝 등 일반적인 시스템 개발과는 조금은 다른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경험했던 외주 개발자가 섭외되었고 우리는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외주 개발자분들과 함께 일을 해 보았는데 C개발자와 그의 팀은 처음이었다.

  첫 프로젝트 회의에서 C개발자, 그리고 그와 함께 팀을 이루며 들어온 두 명의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인터페이스 기술에 특화되어 있다고 매우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이력서에도 인터페이스 기술 이 주로 필요했던 다른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으로 개발한 경험이 기재되어 있었다.

  PM과 나는 매우 자신 있어하는 그들을 보고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겠구나 하며 안심을 했었다.


  C 개발자 팀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 일주일 정도 초기 세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C개발자에게 요청한 납기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세팅이 문제였다거나, PC가 이상하다거나 등의 핑계를 대면서 조금씩 납기를 넘기고 있었다.

  PM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요청해도 묵살하기 일쑤였다. 그저 거의 다 되었다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며 계속해서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조금씩 늘려달라던 납기는 일주일, 이 주일을 넘기더니 삼주 일이 넘어가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곤 거의 한 달이 다 된 시점쯤 그들은 폭탄선언을 해 버리고 말았다. 개발을 못한다고 선언하고 키보드에서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나름 몇 번의 프로젝트 경험이 있던 나였지만 개발자가 개발을 못하겠다고 포기한 것은 정말 그때 처음 봤다. PM 역시 처음 겪는 상황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PM이 C개발자에게 경험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경력에 적혀 있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자신들이 했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왜 말을 안 했냐고 물어보면 비슷할 줄 알았다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미 개발 기간은 꽤 늦어져 많이 난감한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하지 못한다고 하면 대응을 할 수 있었는데 아예 뒤통수를 맞아 버린 케이스였으니...

  그들은 시스템 연계와 관련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이력 역시 모두 뻥튀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력서에 경력은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만 했을 뿐이지 시스템 연계와는 아예 다른 부분을 개발했다고 했다.

  우리 팀은 기만당했다.


  가장 힘든 케이스에 걸려 버린 것이다. 특히 PM은 고객에게 시달리고 개발자들이 속을 썩이니 잠도 못 잔다고 했다. 입술은 부르트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피폐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와 새로운 개발자를 수소문해서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운 개발자를 섭외하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급하게 프로젝트를 땜빵하는 케이스라면 다른 개발자들도 잘 안 오려고 한다.


  PM은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고민을 하던 PM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나와 함께 내부 프로세스를 담당하고 있던 K 선임을 인터페이스 개발 쪽으로 이동시켰다. K 선임은 이제 입사한 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꼬마 선임이었다. 그는 군소리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심상치가 않았다. 같이 일하며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지만 그의 코딩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는 며칠 동안 책을 찾아보고, 구글링을 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이래저래 물어보았다. 그리고 며칠을 뚝딱뚝딱하더니 K선임은 연계 모듈을 통째로 개발해 냈다. 연계 모듈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는 K 선임이 업무 변경 요청을 받고 2주가 채 안 된 시점이었다.

  개발자 3명이 해야 할 일을 입사한 지 5년도 안된 선임이 2주도 안되어서 완료해 낸 것이다.

  개발 서버에서 나오던 통신 성공 로그 한 줄을 보고 엄청 감동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PM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K 선임에게 물어보니 그냥 생각한 데로 해 봤는데 되었다고, 궁금해서 퇴근하고도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봤더니 작동하더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K 선임은 실력자, 은둔의 고수였다. 숨어있는 보배 같은 존재였다.


한계령풀은 숨어있는 보배 같은 꽃이다.


  점봉산에도 은둔의 고수, 숨어 있는 보배 같은 꽃들이 있다. 그중에 한계령 풀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숨어 있는 보배 같은 꽃이다. 한때 환경부 지정 보호종으로 분류가 되어 있던 귀한 꽃이다. 그래서 점봉산에서 조사를 하다가 한계령풀을 만날 때면 흙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나라와 만주 지방에서만 살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귀한 꽃이라기에 그랬으리라.

  

  한계령풀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북한에서는 메감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콩나물처럼 긴 뿌리 아래 감자나 고구마 같은 구근이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한계령 부분에서 제일 먼저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샛노란 꽃 여러 송이가 한 줄기에 한꺼번에 핀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보면 앙증맞고 귀엽다. 보통 혼자 살지 않고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한계령풀을 발견하게 되면 주변을 넓게 보길 권한다. 다른 한계령풀도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조사를 하다가도 한계령풀을 만나면 허리를 펴고 주변을 조금 멀리 둘러보았다. 그럼 거의 영락없이 군락지가 있었다. 한계령풀이 군락지에 한꺼번에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노란 별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한계령 풀. 멀리 보면 노란 별이 반짝거린다.


  한계령풀은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다.

  한 번은 조사를 하던 다른 팀원 중 한 명이 한계령풀 연구를 위해 군락지를 찾을 때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등산로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조그맣게라도 길이 있으니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한참 산에서 야생화를 조사하는 데 재미를 붙였던 나는 호기롭게 도와준다 했다. 하지만 그 결정이 그렇게 고생스러울 줄은 몰랐다.

  지금은 핸드폰으로도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GPS 수신기를 들고 위치를 기록하며 점봉산 깊은 산속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길도 없었다. 팀원이 말한 그 길은 멧돼지가 다니는 길이었다. 한계령풀 군락지를 찾아 2박 3일을 강행군을 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해군 출신인 나는 군대에서도 해 보지 않았던 산악 행군을 제대하고 나서 해야만 했다. 넘어지고 구르며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한계령풀 군락지를 발견하면 귀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매우 기뻤다. 며칠 동안의 갈증이 풀린 것처럼 온몸이 반응을 했다. 조금씩 한계령풀 군락지에 가까워지면 땅에서 노란빛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이후에 C와 함께 온 개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연계 부분에서는 손을 떼고 나와 함께 화면단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엉망진창이었다. 납기를 지키지 않는 것은 예사였고, 가장 기본 중에 하나인 소스 명명 규칙도 못 지키고 코딩 줄도 맞지 않았다. 경험 있는 개발자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프로젝트 중반 넘어서는 거의 없는 사람들 취급을 받았다. 내 일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나는 야근수당은 많이 받았지만 PM과 나의 속을 너무 썩여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그 흔한 회식도 하지 못했다.


  K 선임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고수는 결국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회사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나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몸값을 꽤 올려 이직을 했다. 회사에서는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축하해 줄 일이었다.

  아마 다른 회사에서도 은둔의 고수 같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것이다.



※ 더하는 글

  한계령풀은 군락지가 꽤 발견되어 몇 년 전 환경부에서 지정한 보호종에서 해제가 되었다. 한계령풀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많아져서 군락지가 많이 발견된 것인지 기후 변화에 의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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