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맨스

제 11화_5년 후 2024년 가을

by 국화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Chance does not pass by

여자는 서류 뭉치를 정리하다 말고 남자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남자: 뭐하세요?
여자: 일해요.
남자: 까비~
여자: 어디세요?
남자: 퇴근하는 길인데, 판교 근처시면 맥주 한잔할까 했지요.
여자: 판교 근처가 아니라 덜아까비~
남자: 내일 충주호 라이드 어떠세요?
여자: 오! 게으른 악어! 가보고 싶던 곳인데, 그러면 6:30 am GO!
남자: Good!


토요일 아침.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 남자에게 허락된 시간.


그리고 다행이도 여자는 이른 새벽의 라이딩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둘은 새벽 안개를 뚫고 충주호를 향해 달렸다.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아마 이번이 올해 마지막 라이딩이 되겠지. 남자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롭게 부산까지 갔던 자신. 그때 타던 혼다 cl500은 이제 없다. 새로 산 937cc의 바이크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남자는 당분간 이 바이크에서 더 욕심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자는 남자의 새 바이크를 처음 보았다.
“우와, 멋지다! 나도 빨간 거 타고 싶은데. 혼다는 팔렸어요?”
“그게 진짜 신기한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경주에 출장을 갔었거든요. 그런데 당근마켓 알람이 오더라고요. 근처 계시면 사고 싶다고요. 제가 동천동에 올렸는데, 마침 경주에도 동천동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이 저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죠. 더 놀라운 건 그분이 사는 곳이 제가 묵던 호텔 바로 뒤 아파트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쿨 거래했죠.”


청주호에 악어봉 등산로를 향해 달렸다. 이른 아침이라 산은 한적했고, 정상에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드러난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남자는 늘 겨울에도 아이스라떼를 즐기지만, 이날만큼은 따뜻한 커피가 필요했다.
“이곳은 정말 좋네요. 커피 한잔하고 돌아갈까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문득 떠올랐다.
“지난번에 제가 카톡으로 보낸 그거요.


20년 동안 1년에 한두 번 만나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라고 보낸거.. .”


그날, 남자는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켜고 평소처럼 한숨을 돌리려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문자를 보니 여자의 메시지였다.


“20년 동안 1년에 한두 번 만나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용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단순한 농담인가, 아니면 진지한 질문인가? 답장을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말을 정리하려 했지만,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아내였다.


“저녁 늦어지면 연락해요. 애들 숙제 챙기고 있는데, 당신도 도와줘야 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쁜 일상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문득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 있었다.

여자의 문자가 떠올랐지만, 답장을 하기엔 늦은 시간이라 다음날로 미루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이미 답장을 보내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부담이 됐다. 지금 와서 답장을 한다면 어색하지 않을까?


여자는 줄리언 반스의 신작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이 20년간 두 세 번씩 만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여자는 그 설정이 자신의 소설과 닮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남자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남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꼭 물어보고 싶다.


“그거요? 나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요. 그렇더라고요.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사람들은 공감하고 재미있어 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게 안 될 것 같은 상황이면 글로 써지지가 않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소설 쓰기가 더 힘들죠.”


우리.


여자는 그 단어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었다.
‘나를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건 동질감일까, 아니면 은근히 느껴지는 인정받음의 기쁨일까?


Is that a sense of af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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