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도시의 소음 속, 조용히 마주한 마음 한 조각

서로를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닿아 있었다.

by 국화

서울, 가을의 초입.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도시의 숨결처럼 지나는 오후.

정윤호는 옥상에 올라왔다.
자신만의 공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공간.
서울의 빛과 소음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그는 마커로 무언가를 끄적인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서 이현우의 노래가 아득하게 흘러나온다.
벽돌을 대충 쌓아 만든 테이블엔 반쯤 비워진 위스키 잔, 몇 장의 흑백 사진.

헝클어진 노트 한쪽에 선셋파크_폴오스터. . . ‘나를 찾는 외로운 도시의 산책.’ 이라는 문장이 무심히 흘러 적혀 있다.


그는 오래된 감정들을 그런 식으로 정리한다.
이 도시의 기온과 빛, 향기와 추억을 마치 광고처럼 배열하듯.


정윤호, 50대. 광고회사 대표.
25년 차 결혼생활..
로션 하나만 바르고 나설 만큼 털털하지만, 셔츠를 고를 땐 거울 앞에 한참을 서성인다...
그는 광고쟁이다. 사람의 감정을 잘 아는 남자다.
셔츠 깃을 정리하고, 머리를 쓸어 넘긴다.
색안경 너머로, 그 눈엔 금세 공백이 들어찬다.


유행을 읽고, 사람을 읽고, 시장을 읽는다.
누구보다 대중적인 감각을 가졌지만,
단 한 사람—자기 자신만은 잘 모르겠다.


그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피드엔 음악과 영화, 오래된 이미지들,
그리고 짧은 문장들이 감각적으로 엮여 있다. .
마치 기억의 편린처럼, 그러나 누군가의 시선을 계산한 듯 세련되게.

그리고 그 계산된 시선에, 한 사람이 멈춰 섰다.


서지윤, 40대. 미혼. 직장인
그림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그녀는 우연히 한 서점에서 『지금, 낡은 것들에 대하여』를 집어 들었다.
첫 장을 넘기고는, 책을 덮지 못했다.

“이 사람, 꽤 유쾌하네.”

책 뒤쪽 리퍼런스 목록이 그녀의 책장과 같았다.


그녀는 곧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찾았다.
“정. . 윤 호. . 어? 이미 팔로워였네.”

그냥 술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는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서로를 팔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마디 주고받은 댓글과 DM도 있었다.


올리는 피드마다 마음이 닿았다.
어느 날은 그녀가 그날 아침에 듣던 노래가 올라왔고,
또 어느 날은 전날 밤 그녀가 본 영화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사람… 혹시 나랑 비슷한 사람 아닐까?”


정윤호의 피드에는 언제나 사람의 감정을 짚어냈고, 그 말투에는 장난기와 따뜻함이 함께 묻어났다.

지윤은 몇 번이고 그와 대화를 시작하려고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도, 손가락을 멈추곤 했다.
그는 광고쟁이다.
대중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좋아함’을 계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할 줄 아는 사람.


“나는 그저 one of them일 뿐이야.”


그는 나에게 맞춰주는 게 아니라, 그저 대중의 마음을 읽는 사람일 뿐.


지윤은 가끔 그와의 연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우연히 겹친 음악 취향, 그가 올린 문장 하나, 타이밍 좋게 엇갈린 관심사들.
그럴 때면, 자신과 그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모든 우연은 말 그대로 우연일 수 있다.

과장하자면,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무심한 피드에 의미를 부여하는 열성 팬의 착각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윤호의 스토리에 이런 문장이 올라왔다.


“가끔 누군가와의 공감은 연출이 아니라, 필연이다.”


지윤은 모르게 미소 지었다.


하트.

서로를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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