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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May 23. 2024

응급실에서 보낸 7시간.

그 와중에 경찰서 교통과 담당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놀란 건 놀란 거고;;

교통사고 피해자라 행정상 이것저것 확인해야 했다.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며 체크할 사항을 메모했다.


가해차량 운전자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초행길에 내비게이션을 보느라

파란불 신호를 못 봤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솔직히 그 말이 믿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위 여부보다 내 남편이 사고를 당해

저 지경이 되었다는 현실이 문제였다...

남편은 시속 50킬로 정도의 차에 부딪혀

공중으로 일 미터 정도 떴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남편이 사고를 당한 순간이 그려지면서

몸이 떨리고 눈물이 자꾸 흘렀다.


곧이어 남편 회사의 ceo 분에게 전화가 왔다.

뵌 적도 없는데 이런 일로 통화를 하게 될 줄이야...

황망해 있는 내게 ceo 분은 회사 차원에서

가능한 지원을 다 할 것이고,

남편이 맡았던 프로젝트도

힘은 좀 들겠지만 ; 다른 팀에 분담 지시할 테니

나는 환자 케어에만 집중하라고 하셨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가장인 남편이

회사를 못 나가면 어쩌나 막막했는데..

그분의 따듯한 말이

정신을 차리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때 느꼈던 것이 있다.

사람이 큰 일을 당했을 때 누군가의  전화 한 통,

 따듯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내 곁의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 돼야 함도

새삼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친정 동생들은 코로나로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사고처리 통화를 하면서

각종 검사, 원무과를 오가며

나 혼자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어느덧 4시간이 지나 밤 8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초기 응급처치 말고는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해를 했겠지만

그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한산했고

서너 명의 환자가 전부였는데도

데스크의 간호사들은

좀처럼 환자들을 보러 오는 법이 없었다..


남편의 머리에 감은 붕대 위로

핏물이 계속 배어 나와 살짝 들춰보니

정수리의 상처가 떡 하니 벌어져

뼈가 보였고 피가 퐁퐁 솟고 있었다.

놀란 맘에 데스크로 쫓아갔더니 (일종의 닦달;)

간호사가 와서 스테이플러? 같은 것으로

대충 몇 번 찍는데

수습간호사로 의심될 정도로

어설퍼서 몇 번이나 실수를 했다.

피는 그 후로도 계속 났고

남편의 얼굴은 점점 부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데스크로 가 꿰매달라고 말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응급실 도착 4시간 만에

담당 레지던트를 만났다.

남편은 뇌출혈과 종아리뼈 골절, 전신 타박상인데

뇌출혈은 정도가 약해 수술까진 안 해도 될 듯하고.

종아리뼈 수술은 병원 사정상

빨라야 4- 5일은 지나야 할 수 있다며

빨리 입원 여부를 결정하라 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아내인 나의 직감상

남편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수술을 5일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


시일도 시일이지만

몇 시간 동안 경험한 그 병원의 체계와 시설에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남편의 생사가 달린 일일지 모르는데

메이저 병원에서 수술을 시키고 싶었다..


또 딸이 하필; 고3 미대 입시생이라

화실 일정도 그렇고

내가 서울 강북에 있는 병원과 동탄을 오가면서는

남편과 딸 둘 다 케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레지던트에게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대형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레지던트는 뭔가 조소하는 듯한 웃음을 짓더니

거기 연락해 봐야

이 시간에 외상 중환자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 해도 애타는 환자 보호자에게

꼭 그런 표정을 지어야만 할까...

못내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어쨌든 최초로 남편을 받아준 병원이니

좋게 생각하고 싶었다.


부랴부랴 검색을 해

강남의 s병원, 분당의 s대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했다.

레지던트 말대로

외상 중환자를 받을 베드가 없다고 했다.

인연이었던 걸까...

갑자기 티브이에서 봤던 이국종 교수님이 계셨던

아주대 광역외상센터가 떠올랐다.

유명한 곳이니 자리가 있을까 싶었지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시간은 벌써 밤 열 시가 넘었다.

아주대 외상센터의 수간호사분께서

남편의 상황을 꼼꼼히 물으시는데

음성과 태도에서 인간적인 배려와 신뢰가 느껴졌다.

마침 베드 하나가 났다고 바로 준비해 놓을 테니

서둘러 내려오라고 하셨다.

올 때 전원 동의서에 담당 레지던트에게

사인만 받아오면 된다고 하셨다.


레지던트를 찾아갔지만 식사를 하러 갔다고 했다.

한 시간여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길래

데스크에 연락이 안 되겠느냐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기다리는 말뿐.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병원밖으로 나가 그를 찾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 있는지 알고 그러고 다녔는지 ;;

그때는 그저 빨리 남편을 아주대로 이송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요행히 병원 현관 앞에서  

한 무리의 의사들과 밖에서 들어오는

레지던트와 맞닥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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