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고 회사로 복귀했다.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멀쩡한 모습으로..
그러고 보니
내 시간은 사고가 났던 봄에서 멈춰있는데....
어느새 완연한 가을이었다.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의 시간을 즐길 틈도 없이
아이의 입시가 찾아왔다.
미대라서 대학마다 실기시험을 치르러 다니는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입시에 몰두할 시기에 아빠의 사고가 났기에
거의 케어를 못해줬는데
고맙게도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다
언뜻 천신만고의 모험 끝에
주인공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는
그리스 로망스 소설의 결말처럼 보이는...
하지만... 현실은 소설이 아니었다.
잠복해 있던 트라우마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잘 먹지도 못했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사고처리로 급급했던 당시엔
무서워도 참고 넘겨야 했지만
외상센터에서 보았던 트라우마적 외상(바로 앞에서 갑자기 임종하신 분도 계셨다 ㅠ...)의 장면이
순간순간 되살아났고.
하필 코로나시국이라 기댈 가족도 없이
나 홀로 버텨야 했던 절망의 시간..
가해자와 합의를 보는 과정에서 겪었던 감정적 고통들이
밤마다 악몽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건 전화공포증이었다.
벨소리만 나면 온몸이 떨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고
회사에 간 남편이 카톡 답이 늦거나 전화를 안 받으면
사고가 난 것 같아 울면서 회사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부하직원분들이 나를 안심시키고 달래는 상황이 돼버린...;
설상가상 나는 딸에게도 그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연락이 안 되면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사고당시 화장실 청소를 하다 119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아
이사를 가려고 서둘렀다 ㅠ
그런 나 때문에 가족의 일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툭하면 놀라 울음을 터트리고
밤에도 수시로 가족들의 방문을 열어보며 무사한? 지 확인하고..
동네 정신과에서는 너무 심각하다고 해서
유명하다는 강남의 정신과에서 값비싼; 치료코스도 받았고
강한 약도 먹어봤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의 사고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게 맞았을 것이다.
아빠의 3 기암과 남편의 교통사고.
설상가상 그즈음
누구보다 열심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동창생이
갑작스러운 말기암 진단과 함께 연락두절이 된 사건마저 일어났다 ㅠ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불가항력적인 불행을 통보받는 인간의 삶에 대해
심한 무력감과 저항감이 들었다.
그동안 읽고 들었던
삶에 대해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