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를 마친 뒤라
사실 2학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이었을 뿐...;
어떤 것을 완전히 모를 때보다
오히려 어설프게 아는 게
더 헷갈리는.... 그런 너낌?;
동시대미술 작품 기획을
한 주에 하나씩 제출해야 하는
현대예술기초 수업은
특히나 내 현실을 깨닫게 했다.
반 친구들의 기획안은
현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는 감각이
간단명료하게 드러나는데 반해
내 기획은 뭐랄까...
이 세상, 유일무이한 진리를; 저 혼자 알고 있는 듯
단언하는 듯한 어조에
문장 하나하나에 따라붙는
부연설명과 유사 자료들로
대략난감 상태였다.
그 옛날 아침 조회시간
결국은 몇 마디면 될 내용을
아이들이 쓰러져나가든 말든
끝없이 이어가며 주장하던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특히 형식면에서
나는 우리 세대의 답습적인 방식.
설명적인 이미지와 같은 내용의 캡션을 달아
주야장천 동어반복을 하고 있었다.--;
특히 현실정치에 관련한 작업 안은
내가 대학교 때 보았던
민중미술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직설적인 풍자와 은유 방식..;
너무 설명적이에요.
40년 전에 이미 그 시대 작가들이 다 한 거예요;
나는 교수님께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여기서 설명적인 이미지란
클리쉐까지는 아니지만
지시하는 의미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를 말한다.
이를테면 슬픔과 고통의 정서라고 할 때..
이런 걸 설명적인 이미지라고 한다.;;
이런 이미지 아래에다
ex) 나는 고통스러웠다. 나는 분열되는 것 같았다.
처럼 또다시 같은 의미의 캡션을 다는
설명+ 부연+ 반복 형식은
동시대 예술에선
88년도 올드 라테 스타일인 것이었는데
라테만 몰랐던 ㅋㅋ
수업이 거듭될수록
내가 아는 모든 자기표현방식은 (
ex 말, 대화, 글, 작업...)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어떻게든 부연하고 반복해서
상대에게 주입시키려는
욕망이 주였음을
섬짓하지만;
깨달을 수 밖에는 없었다.ㅠㅠ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자란 세계는
주입, 동어반복, 이미지반복...
자기주장을 타당화하기 위한 끝없는 부연설명들,
(대부분 허언으로 밝혀진)
온갖 증거들로 범벅이 된 곳이었기에.
그런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자란 내가 또 다시 그런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같은 세대끼리 있을 땐 정말이지 잘 몰랐는데 --
(동년배끼리만 있으면 편하지만 독사과가 되는 이유..--;;)
mz 세대들 사이에 있으니
아! 내가바로 그 전설의 꼰대!
엿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 딴엔
삶의 지혜를 설파한다며
진심을 다해 목청을 높여도
이야기를 듣는 자녀들은
뭔가 대략난감한 ㅋ 생명체를 보듯
공하한 눈빛이 되는 이유도 그런게 아닐까..
(일반화하는건 아니다 ㅎ
안 그런 부모도 당연히 있지만....
허나 라테는 그렇다는 ^^;;)
마치 아무도 듣지 않는데
저 혼자 시끄러운 티비속
퇴물 시사비평가의 뻔한 논평처럼....
아이들 입장에선
무용한 데다 지겹기까지 한...
이상한 확신에 찬 주장들;
친구들의 발표는
짧고 명료하게
그저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하고 그칠 뿐.
본인이 원하는 반응을 강요하지 않는데...
왜 나는 이렇게나 긴 설명을 해가며
내 주장을 납득시키려는 짓을 하는 걸까..;
그것도 30년 전의 고루한 형식을
답습하면서 쯧.ㅠㅠ
어떻게 해야 이런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나...;
솔직히 미션임파서블 아닐까..
나는 점점 우울해졌다.
내가 우울하든 말든..ㅎ
과제들은 매주 제출해야 하니
역시나 라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몸부림을 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