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미대에서는 누드 크로키를 종종 그리지만
우리 과는 순수미술이 주가 아니라
라테는 꿈에도 누드를 그리게 될 줄 몰랐었다.
그런데 다음 시간엔 누드 크로키를 한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실물 인체의 선을 그려보는
흔치 않은 기회라 동기들은 기대가 된다고 했지만
난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흘렀다;
자식뻘의 mz세대들 사이에서
누드모델분을 보며 그림을 그린다는 게
생각만 해도 너무 민망해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날짜가 다가올수록
차라리 결석할까..-.-
싶기도 했지만 학점 걱정도 되고
뭔가 궁금하기도 해서ㅋ
결국 들어갔다.;
처음엔 솔직히 문화충격이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크로키를 시작하는 라테...ㅠ
모델분은 프로답게
다양한 동세가 드러나는
멋진 포즈와 쿨한 매너로
수업을 이끌어주셨다.
보디빌더들처럼 발끝으로 버티는 동작이 많아
어지간한 운동인이 아니고는 불가능함도 깨달음;
교수님께서 인체 크로키는
동세가 핵심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리는데만 집중하니 무안함은 저 멀리로 ㅎㅎ
사람 몸의 역동적인 동선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 생각뿐이었고
나중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수업은 끝이 났다.
휴우...
교수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유 선생! 인체 크로키 어렵지 않았어요?
'악! 유선생이라니... 너무 하시잖아....'
질문 내용보다 선생이란 호칭에 식겁한 라테..ㅠㅠ
강의실 여기저기서
큭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나이로 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그날따라 망신을 당한 것처럼 너무 창피했다 ㅠ
내 나이가 워낙에 엽기적으로 많다 보니 ㅋ
선생이란 호칭으로 불러주신 건 알지만..
교수님께서 나보다 7세 정도 위시고
난 교수님의 제자인데
선생이라고 불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른 동기들처럼
나도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다.ㅜ
쉬는 시간에 교수님 앞으로 갔다.
교수님. ~
응?
저... 선생 말고 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때 내 어조가 좀 강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동기들한테 들으니;;
안 돼!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름을 불러~
평소엔 스마일맨 그 잡채이신 교수님께서
갑자기 언성을 높이셨다;;
하지만 난 굴하지 않았다;;
왜요? 저도 제 이름이 있는데...
돌아보면
그 무렵 나이 때문에 부정적인 해프닝을
많이 겪고 있던 터라
피해의식에 그렇게 날이 섰던 것 같다;;
그래. 알았어!.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교수님께서는 뭔가 화가 나신 듯 보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듣는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공개적인 강의실에서
다짜고짜 교수님께
항의성? 요구를 했던 내 행동도 문제가 있었다..
그땐
내 이름을 내가 불러달라는데 뭐가 잘못이야.
이런 생각뿐이었지만
교수님 입장에서는 무례한 행동일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교수님께 갔다.
교수님!
왜요?
교수님께서는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대답하셨다.
죄송합니다.
뭐가?
주문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순간 뽀로퉁하셨던 교수님도 뭔가 빵 터지신 듯ㅋ
웃고 계셨다 ㅋ
"라테씨... 그게.. 있지...
우리 둘 다 힘든 부분이 있는 거야.
나는 나이대로 예우를 한다고 한 건데
듣는 입장에선 불편할 수가 있으니..
알았어 앞으론 이름 부를게."
그러자 또 내 맘은 그 새 무슨 변덕인지 ㅠ
조금 전 교수님께 항의하던 ;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너무 죄송스러웠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
뭐라고 불리든, 내가 학생이면 된 거지.
왜 이렇게 뾰족하게 굴고 난리야.
나이 많은 유세 떠는 거야 뭐야..
답 없는 자책을 곱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공부 하나에만 집중해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나는
나이라는 부분에;
너무 많은 감정소모를 하고 있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