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라떼의 다양성 시험......
동시대 미술은 다양성에 주목하는데.. 그중에서도
성정체성(섹슈얼리티) 작업은
80년대 서구에서 정점을 이룬 뒤 여전히 활발하다.
대학에서 라떼는 퀴어 작업을 종종
보고 듣고 말하는 경험을 한다.
*mz세대는 동성애,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 등의
성정체성, 성적 지향을
직접적인 용어대신 퀴어라는 말을 쓴다. 세분화해
lgbtq 라고도 하는데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의 앞자를 따서 )
통칭해서 퀴어로 부른다.
누군가 자신이 퀴어라하면
동성애/ 트랜스젠더로 알아들으면 될 것 같다.
여튼 내가 자란 70,80년대 한국은;;
다양한 성정체성 작품은 커녕. (진정코 1도 못봤음)
동성애를 성도착증과 다름없는,
부도덕한 것 . 기형적인 것으로 죄악시하던 사회였다.
어른이 되어서
개인의 성정체성, 성적 지향을
국가가 규정한다는 게 지독한 폭력임을 깨달았지만...
내 무의식에 박힌 편협한 성정체성의 시각이
한번에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언급이나 암시에 관한
공포증 같은 것...
부도덕하고 정숙치 못한 짓이라고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는 것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퍼포먼스 교수님은
신진 독립큐레이터이시다.
올 초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모아 다양성을
주제로 전시회를 하셔서 보러 갔었다.
한 일본 아티스트의 비디오 작업을 대학생들
무리에 섞여 보게 되었다.
일본 아티스트의 작업은 자주 접하지 못해서
무척 기대가 되었다.
초거대 모니터 화면 안에서
각각 그물망 안에 든 두 개의 배구공이
진자운동을 하듯 서로 쉼없이 부딪힌다.
배구공에는 음모를 연상케하는
거칠고 기다란 털들이 수북히 달려 있다.
서라운드 스피커에서는
남성의 거친 숨소리가 귀청을 울리며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퀴어인 남성작가가
고교시절 배구부 선배에게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꼈던 연습날의 일기가 나레이션된다.
숨소리는 갈수록 격렬해지고
배구공의 진자운동도 점점 빨라진다.
털이 수북한 채 매달린 두 개의 배구공이
쉴새없이 부딪히는 걸 보며
함성인지 신음인지 헷갈리는 숨소리와
남자가 남자의 스킨쉽에 설레였던 순간에 대한
담담한 회고의 나레이션을 듣는 일이
라떼에겐 정말 곤역이었다.;
작품 자체에 대한 불편보다
좁은 공간에서 자식뻘인 대학생들 사이에
중년여성인 내가 영상을 보는
그 상황이 수치스러웠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런 저런 생각이 밀려왔다.
작가는
자신의 첫사랑을
퀴어라는 틀에서 규정짓는
세상의 시선을 정면으로 조준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
세상의 모든 첫사랑 이야기들처럼
몽글몽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퀴어하다는 이유로
불편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나의 시선을 포함해 말이다..
그제야… 나는 여전히 구세대의 틀에서
요만큼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날 이후
열린 마음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의 간극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면서
나를 감시? 하게 되었다.
옛말에
배워먹지 못한 것이.. 라는 비하의 표현이 있다..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다양성에 대해 제대로 배워먹지 못했음을...
30년이 지나 다시 온 대학에서
mz 세대들 사이에서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
다양한 시각의 작품들을
기괴한 비정상의 몸부림이 아닌
존중받아 마땅한 누군가의 이야기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라떼가 넘어야할 산은 높고도 높다는 것도…
동기들과 작업하며
그들의 열린 태도를 가나다라부터 배우면서
(관련 에피소드가 참 많다. ^^;)
언젠가는 내가 갇혀있는
라떼의 세상을 비집고 나갈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다양성이란
내가 마치 베풀 듯 인정해주어야하는
타자의 성질이 아니라.
나의 인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타자의 성질과
타자의 인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나의 성질이
세계의 무수한 경계들에서
만나고 접촉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