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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Jan 12. 2024

브런치 단상

할머니의 언어...

당신의 언어

난 당신의 언어가 좋았어요
살아온 시간이 묻어나던 말투.

가끔 말을 하다 멈출 때가 있어요.

당신의 언어가 나의 언어에 묻어날 때
당신이 곁에 머문 순간이 떠오를 때
난 당신의 언어를 참 좋아했어요.

                                                                                   by 임은진, 2021 시민 공모작.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저자께서 소개하신 시다.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보석같은 시...


읽는 내내 나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맞벌이셨던 부모님 대신

우리 삼남매를 키워주셨다

할머니는 외모도, 말도 정갈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보면 늘 웃으면서 이름을 부르셨다.


내게 할머니는

아무개야! 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만 기억된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삶이 순탄했느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6.25때 할아버지는 행방불명되셨다..

30살에 과부아닌 과부가 되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을 길러낸

할머니의 속마음이 어땠을지

나는...한 번도 그걸 헤아린 적 없는

속알머리 없는 아이였다.


할머니는 집안일은 물론

우리 삼남매의 뒤치닥거리,

도시락싸기의 와중에도

식혜, 수정과,  떡, 도토리묵처럼

손이 가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주셨다.

솔직히 지금 나보고 그러라면 가출 했을 것 같다 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할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죄송해서 말도 안 나왔다...


늘 웃고만 계시니

할머니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할머니는 홍루몽이라는

오래된 한글본 책을 갖고 계셨는데

잠들기전 나를 끌어안고

홍루몽을 읽어주시며 종종 우셨다.

누가 불쌍하고 누가 불쌍하다시면서..

나는  재미 없다고 다른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럼 할머니는 바보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에 시골에 한 바보가 장가를 들었는데..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꽤나 웃겨서 나는 매번 깔깔거렸다.

할머니의 따듯한 품에서 듣던 할머니의 이야기..

가녀리고 가릉가릉한 ...그  목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셨다.

결혼식날 할머니께서 시어머니께

우리 손녀를 잘 부탁드린다며

90도로 머리를 조아리셨다고 …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결혼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

가뭄에 콩나듯

할머니를 보러 친정에 갔다..


그때마다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이구. 우리새끼 하며 좋아하던 할머니...


엄마는 평생… 이유없이 할머니를 싫어했고

(나의 엄마는 나르시스트에 가까운 분이다..;)

나중엔 거실에 나오는 것도 눈치를 줬다.;


할머니는 외며느리의 심기를 거스를까

돌아가시기 전까지 근 십오년을

그 작은 방안에서 종일 ...

혹시나  오늘은 손주들이 올까 기다리기만 했다..


왜 이렇게 안왔냐고.

무슨 일 난 줄 알았다며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는데 …


내 머릿속은 온통 내 가정의 일들로 가득 차

너무 바빴어.

사는 게 정신 없어서 그랬어

자주 안와도 걱정하지마 제발!

이러곤 방을 나서던 ..,

늙어서도 속알머리 없던 나..


할머니는 99세로 무병장수하셨고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모두 호상이라 했지만...

호상이란 게 정말 있을까..

여전히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도

그의 언어는

사랑하는 이의 맘속에 살아 있다는 걸.

나는 할머니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죽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당신의 언어를 읽으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이 순간...


젤 큰 애가 50대 라떼다 ㅋㅋㅋㅋㅋㅋㅋ

초2학년 추석즈음

할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한복을 맞추러 가셨다.


고모들이 당신께 주신 용돈을 모아서

양단? 한복을 해입히고 싶으셨다며..


나는 더운 날에

시장에 갔다, 사진관에 갔다하는게

지쳐서 뚱해 있었다..--;

 

할머니는 맞은 편에서 웃는 얼굴로

할머니의 언어로 …

우리 이름을 부르시고 계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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