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먹는다는 건

by 한영옥

결혼 하고 신혼 1년동안 남편 아침을 꼬박꼬박 내 손으로 차려주는 정성을 가졌다. 매일 다른 국에 반찬에 다양하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잡채도 해보고 닭도리탕도 해보고 심지어 사골을 푹 고아 우려낸 곰탕까지 다양하게 해 보았다. 모양새는 갖춰지는데 맛이 그저 그랬다. 곰탕의 깊은 맛이 아닌 그냥 우려낸 밋밋한 국물이었다. 그래도 시도해 본 곰탕을 시아버님께 가져다 드리는 애교도 부렸다. 맛있게 드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역국을 끓이면 미역, 고기, 물, 마늘 맛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함께 어우러져 국물 한 모금 넘기면 속이 확 풀어지는 맛이 아니다. 콩나물국은 또 어떠하리. 이건 뭐 맹물에 콩나물 씹는 것이다. 닭도리탕은 닭도리국이 되어 물이 흥건하고 카레도 카레국이 된다. 특유의 걸죽함은 어떻게 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요리해서 그런지 냄비와 후라이팬이 신혼치고는 빨리 닳았다.


아이를 출산하고 돌보며 힘에 부치니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아침은 남편이 직접 차려 먹고 간다. 그래도 국이랑 김치만 있으면 밥 한그릇 뚝딱인 인심 넉넉한 남편의 입맛이다. 그래서 국만 한솥 끓여둔다. 여전히 따로 노는 미역국, 된장찌개, 콩나물국, 무국 등등 엄마의 깊은 맛은 도대체 어떻게 내어지는지 엄마에게 물어봐도 뽀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도 그러신다. 자기도 처음엔 잡채면이 막 날라다녔다 하신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확 되어 풋 웃음이 나왔다.


친정집 가서 밥을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 어린 딸도 할머니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한다. 할머니의 잡채, 갈비찜, 미역국 심지어 계란밥을 해줘도 맛있다를 연발하며 잘 먹어 이쁨받는 손녀가 된다. 나도 맛있어서 밥 한그릇 먹고도 반찬을 계속 더 집어 먹는다. 어느 순간 아이는 할머니와 전화통화하면서 "할머니, 다음에 가면 맛있는 거 많이 해주세요." 한다. 할머니는 좋아라 " 우리 손녀, 많이 해줄께 놀러와." 하며 둘이 모녀인 듯 애틋하다.


도대체 깊은 맛은 어떻게 내는 것일까?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난 전라도가 고향인 이웃집 언니의 손맛도 기가 막힌다. 전라도 음식이 맛있어부려 이다. 김치는 을마나 잘 담그는지 이 언니 요물이다. 겨울되어 달랑무로 시원하게 담근 동치미를 나누어 주는 인심 좋은 전라도 언니. "맛있다 언니야."하며 다음에 같이 담그자고 넉두레도 부려본다. 작년 겨울도 같이 담그자고 했더니 후딱 담궈서 한통 나누어 주는 정을 받는다. 추운 겨울에 이 시원한 맛은 추웠던 속을 따뚯하게 해 주기 까지 한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 친구들은 비슷한 고민을 나눈다. 미역국이 맛이 안난다는. 나두 그랬는데. 서당개 삼년 풍월을 조금 빨리 안 듯하다. 몇년 전부터 맛이 조금 난다. 미역국 맛이 조금 더 깊어지더니 인제 맛나게 끓여진다. 우리 집 와서 먹어본 친구가 이 맛을 어떻게 내느냐며 울분을 토한다. 미역, 소고기, 참기름, 간장 달달 볶아서 마늘 넣고 물 넣고 끓이면 된다고 어깨 으스대며 말하니 자기도 그렇게 한단다. 나두 그랬는데 옛날 일들이 있지만 이게 왜 안되는지 하는 의아함까지 어깨 뽕 올리며 얄미운 미소도 보낸다.


요즘 근래에는 닭도리국이 아닌 자박자박 해진 닭도리탕도 너무 맛있게 끓여진다. 그래서 연거푸어 3번은 해보고 친구까지 나누어 주었다. 카레도 카레국이 아닌 진득한 카레로 맛있게 완성된다. 딸아이 친구가 와서 먹더니 이건 무슨 카레 냐고 물으며 자기도 엄마한테 해달라고 말한다고 한다. 야채, 고기 듬뿍 넣고 물은 음식재료 딱 잠길 만큼만 붓고 카레 가루 뿌리며 잘 저어주며 푹 끓이니 된다. 걸죽해진 맛있는 카레가 한그릇 더 먹고 싶은 맛이 난다. 잡채는 왠말이냐. 윤기 좌르르 흐르는 잡채를 연신 만들어 친구도 나누어 주니 네 식구 앉아 서로 아껴먹으라고 했다며 맛있어 한다.


음식을 하면서 요령이 생기고 애정이 생긴다. 좀 더 다양하게 재료를 잘라넣고 감칠 맛을 위해 토마토도 잘 이용하는 아이디어도 쓴다. 아이가 콩나물 무침을 좋아해서 해 주면 손에 참기름 좔좔 묻혀가며 한 번 식사에 많이도 먹는다.


남편의 퇴근이 늦고 주말에도 일을 해서 함께 앉아서 식사하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차려 줄 상황이 되면 최대한 있는 재료 모두 이용해서 한 상 차려준다. 그리고는 맛있냐고 연신 묻는다. 맛있다고 미사여구 붙여서 환호의 리액션은 못하는 남편이지만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해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매일같이 일만하는 남편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밥상이었으면 한다.


우리 아이도 아침을 꼭 먹고 간다. 간단하게 계란 후라이에 몇 가지 반찬이지만 잘 먹고 가는 밥 한그릇에 마음이 놓인다. 아이가 돌아오면 과일에 간식거리 챙겨주고 저녁밥은 또 두둑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내가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위안을 얻고 에너지를 받았듯이 우리 가족에게 그런 엄마의 존재가 된다. 내 밥상도 중요하지만 남편과 아이가 바깥 활동을 하는데 밥상으로 내 힘을 보태고 싶다. 엄마의 아침밥을 꼭 먹고 갔던 나이다. 그래야 학교가서 배가 안고프고 4교시까지 잘 버틸 수 있었다. 사회 생활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엄마의 밥상을 받으면 빠졌던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고 속상했던 마음까지도 흐려지며 밝아진다.


충만한 밥상을 받아봤고 그런 밥상을 줄 수 있는 엄마이고 아내이고 싶다. 요즘에는 밥상 잘차리는 짝꿍 친구 덕분에 이웃과도 나눌 수 있는 밥상이 되어 간다. 친구 엄마가 해주신 나물 반찬과 석박지를 받고 어느 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도 먹고 정도 먹고 사랑도 먹는다.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음식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통해 사람간의 온정을 느끼며 비타민 같은 활력소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뱃속에 들어온 음식들은 나의 저장고에 차곡차곡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진다.

<친구 엄마가 주신 반찬과 내가 끓인 순두부&두부 김칫국 밥상>

이전 06화여행의 진미는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