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환정 Sep 17. 2017

파도 속의 섬으로, 한 발자국_2

겨울, 제주

겨울 협재는 침묵의 바다였다.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멈춘 곳은 협재해수욕장이었다. 가장 제주다운 바다가 가장 제주다운 얼굴로 무심하게 사람들을 반기는 곳. 그런 곳도 겨울이면 어두워진다. 비단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 입을 꽁꽁 다문 것처럼 변해버렸다. 들숨 없이 날숨만 거칠게 내쉬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바람은 이곳에서도 거셌다. 혼자의 감흥 어쩌고 하는 건 느낄 새도 없이 다시 구르듯 차에 올라 도망을 갔다.     



다음날부터 내가 제주에서 한 일이라곤 별 게 없었다. 첫날부터 겨울 제주 바다의 엄숙한 환영식 덕분에 더 이상 바다가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산으로 가자니, 나는 세상 누구보다 산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겨울산이라니.

그래서 나는 차를 천천히 몰며 제주의 이곳저곳을 아무렇게나 오갔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았고 숙소를 보아두지도 않았으며 음식점 같은 것을 미리 탐색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한 상태였다. 그 멍한 머리로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결혼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었지만, 그것들은 ‘납품’을 위한 과정이었을 뿐 여행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일 때문에 발생하는 여정은 효율이 우선이었기에 사전에 많은 부분이 정해져 있었고 내 취향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떠나오니 누군가와 상의하지 않고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하루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억새가 일렁이는 겨울 산굼부리


그래서 오름에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산굼부리였다. 아내와 함께 가본 적이 있는 곳이 지나던 길에 있기에 다시 올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굼부리가 좋았다. 까마귀 떼가 파편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도 좋았다. 그래서 다른 오름들은 어떨까 싶은 맘이 생겼다. 어떤 오름이 어디에 있고 얼마나 좋은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돌아다니다 오름처럼 보이는 곳이 있으면 차를 멈추고 올랐다. 산처럼 생긴 것들은 지나치고 짧은 풀들이 누렇게 변해 있는 곳들 위주로 골랐다.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것 같던 까마귀떼


만만해 보이는 곳만 골랐으니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산을 타는 것보다는 쉬웠다. 꼭대기가 까막득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오를만 했다. 문득 신혼여행 때가 생각났다. 드라이하고 하드보일드 했던 9박 10일의 일정.


결혼 전 아내가 내가 제시한 신혼여행지의 조건은 “우리 둘 모두 처음인 곳”이었다. 그러자 북미와 남미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내는 아마존이 좋겠다 했고, 나는 실제로 아마존 트레킹 프로그램을 알아봤지만, 오고 가는 데에만 꼬박 나흘이 걸리는 일정이, 직장인인 아내에게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타협의 결과물은 스페인과 포루투갈이었다. 10월말에 돌아다니기도 좋을 테고 음식도 맛있으며 구라파의 향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내 소개가 주효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석 달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시했던 곳이 이집트였다. 인류 문명의 기원을 돌아볼 수 있으며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피라미드가 있고 홍해에서의 다이빙은 환상적인 시간이 될 거라는 설명에, 회사일로 바쁘던 아내는 포기하듯 “OK”를 해버렸다. 


그 후 비행기와 호텔과 현지 이동수단을 예약하는 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다시 말해, 내 맘대로 일정을 짤 수 있었다. 결혼식 이틀 전까지 야근을 하느라 지칠대로 지쳐있던 아내가 그런 사실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카이로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에야 카이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 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별 거는 아니었다. 그저 몇 가지 당부들.

“당신한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무시해. 공항이랑 시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끄럽고 더러워도 그냥 그대로 이해하는 게 좋을 거야. 옆에서 보기에 내가 이집트 사람들한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해. 싸우는 게 아니라 흥정하는 거니까.”

이 이야기를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에야 했던 건, 그때서야 내 옆에 동행이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혼자 카이로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모두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세상 하나 뿐인 동행과 함께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는 걸, 배낭이 아닌 트렁크의 손잡이를 잡고 비행기 복도에 섰을 때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씩씩하게 잘 돌아다녔다. 얼마나 씩씩했는지, 막상 천신만고 끝에 홍해 다이빙의 성지 다합에 도착했을 때는 해발 2280m에 달하는 시나이 산에도 오르겠다 했다. 그렇다. 모세가 십계를 받았다는 바로 그 산 말이다.


시나이 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보던 일출


산행은 새벽 2시부터 시작됐던 걸로 기억한다. 시나이 산은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이었다. 길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지만 온통 자갈이었고 완만하지만 끊임없이 오르막이었다. 아내는, 그런 산을 잘도 올라갔다. 동의를 구하는 심정으로 “힘들지 않아?”라고 물어봤지만 아내는 “괜찮은데?”라며 아무렇지 않게 걸어갔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건 출발장소부터 내게 말을 걸어온 낙타 장수들.

그들은 관광객 옆에 달라붙어 끊임없이 “Good camel” “Healthy camel”이라 속삭이며 낙타를 타고 시나이 산을 오를 것을 권했다. 그리고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서, 나는 낙타에 올랐다. 그리고 아내는 나를 태운 낙타보다 더 앞서 걸어 나갔다. 굿 와이프이자 헬시 와이프였다.

그렇게 도착한 시나이 산 정상 무렵에서는 낙타에서 내려야 했다. 길이 좁아져 다시 돌산을 걸어야 했는데, 그 한 시간 남짓한 과정에서 나는 퍼져버렸고 아내는 겅중거리며 “난 저기 좀 다녀올게”라며 결국 꼭대기에서 해돋이를 보고 왔다. 난 헐떡거리며, ‘모세가 십계를 받았다는 건 이 높은 산을 오르느라 생긴 환각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나이 산 정상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는 낙타들


그렇게 산을 잘 타는 아내는, 나를 뒤에 달고 오름에 오르는 게 영 마땅찮았을 것이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나는 느린데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상당히 불만스럽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래서 협재 해수욕장 맞은편의 비양도를 오를 때도 나를 어르고 달래는 데에 꽤 많은 애를 썼다는 사실을, 혼자 용눈이 오름을 오르면서야 하게 되었다.

오름의 꼭대기에 오르자, 시야가 넓어졌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앞만 보고 걷다 보니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더욱 극적이었다. 바람은, 산굼부리에서 불던 것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주위는 고요하고, 의외로 아늑했다. 저 밑에 작은 모습으로 오가는 사람들 혹은 자동차들이 다정하게 보이기도 했다. 시나이 산만큼 높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까마득하게 높지도 않고, 밤을 새워 걸을 필요도 없었으며, 낙타에 내 무거운 몸을 의탁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용눈이 오름은 특히 겨울에 오르기 좋다


그래서 난 몇 개의 이름 모를 오름들을 더 올랐다. 어떤 것은 힘들기도 했고 어떤 것은 예상보다 쉬워 “뭐야 이게.”라며 건방진 코웃음을 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오름들이 좋아졌다. 아내의 뒤를 따라 오르던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평지를 오랫동안 걷는 것보다는 조금 더 힘이 들어도, 옆에서 보기엔 어영부영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쨌든 혼자 올라가는 재미가 괜찮았다. 이런 기분 때문에 아내도 등산을 좋아했던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혼자였기에 상상할 수 있었던 아내의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앞서가는 누군가의 발뒷꿈치만 보며 헐떡여야 했을 테니까.     


제주에서 내가 돌아오고 아내 역시 서울에서 돌아왔을 때, 짧은 며칠 동안이나마 뱃속의 아이는 좀 더 커진 듯 했다. 석 달 후, 예정된 날에 맞춰 뱃속의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내는 등산이라 불릴 만 한 행위를 하지 못 하고 있다. 첫째가 제법 걷기 시작할 무렵 둘째가 생겼고 이제는 두 아이에게 포위된 일상을 살게 되었기에 홀가분하게 떠날 일이 없어진 탓이다. 

그래도 이제 첫째는 제법 의젓한 다섯 살이 되었고 둘째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엄마의 부재에 대해 미리 설명하면 울고 떼를 쓰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다음에 온 가족이 제주에 가게 된다면, 적어도 하루 정도는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들어줄 계획이다. 그 하루동안 제주에서 가장 높은 오름이라도 올라갔다 오라는 의미로. 물론, 예전만큼 씩씩하게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이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혼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제주는 혼자인 아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파도 속의 섬으로, 한 발자국_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