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의 대표음식을 찾아서
'경북 음식은 맛이 없다'라는 명제가 경북의 모든 지역을 아우르지는 못 한다.
적어도 안동 정도는 제외해야 한다.
안동을 오갈 때마다 그리고 그곳에서
건진국수를, 찜닭을, 해장국을 먹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아지랑이처럼 하늘거리는 은은함으로 뒷맛을 배웅하고
강렬한 감칠맛으로 의미 있는 발자국을 기억에 남기는 게 안동 음식이라고.
그래서 안동에서의 식사는 즐겁다.
일부러 숨기거나 지나치게 드러내려는 삿된 마음 없이
담담하면서도 당당한 음식들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상찬을 하지만, 안동 음식의 진수를 음식점에서만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너무나 많다.
이러저러한 역사와 사연을 품고 있는 종가들이 품고 있는 내림음식들이
진정한 안동 음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약 10년 전, 일 덕분에 내로라 하는 종가를 돌며 다양한 종가 음식을 체험해 본 바
안동 종가들의 음식은 수수하면서도 정갈했다.
정성이 맛으로 구현되면 이런 형태겠구나 싶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문제는, 그런 맛과 모양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음식들을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조금 우울해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안동과 달리 경주의 음식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무척 우울해진다.
어쩌면 참담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경주에서 맛있는 무언가를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있다.
힐튼 호텔의 짬뽕은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그걸 경주 음식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렇다 해서 경주가 안동보다 식재료 수급에 불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동해와 토함산, 너른 논과 밭에서 다양한 먹거리들을 채취하고 재배한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맛있게 만들지 못 할까?
경주에 으리으리한 종가들이 없었을까?
천만의 말씀.
경주 역시 유서 깊은 종가들이 여러 곳 존재한다.
경상도의 '경'을 담당하는 지역이잖은가.
조선시대 대표 부자라 할 수 있는 '최부자'도
경주에서 나고 자라 재산을 일구고 주변 뿐 아니라 나를를 위해 헌신했다.
그럼에도 경주 종가들의 음식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다 보니 교류가 없었을까?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고려, 조선 시대에도 경주는 풍류를 즐기는 이들이 선호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경주는 왜 맛있는 음식이 없을까?
약 1년 동안 경주를 주기적으로 오갔던 경험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경주 음식'이라 지칭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난 적이 없다.
게다가 그 중 많은 수는 관공서의 누군가와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즘 SNS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점들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가보질 않아 100% 수긍할 수는 없지만, 근 몇 년 동안 경주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게
일본식 라멘이라면 뭔가 잘못되긴 한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엊그제, 가족과 함께 안동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경주에서 제일 맛있는 건 빅맥"이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무색케 만들 무언가를 만날 날이 언젠가 오면 좋겠다.
물회, 가자미회, 한우, 순두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