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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Dec 04. 2017

겨울,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한다는 것_(6)

산타마을

기차가 로바니에미에 도착한 건 밤 11시가 다 됐을 무렵이었다.

어두웠고 눈이 잔뜩 쌓여 있었으며 나는 혼자였다.

7, 8년 전쯤에 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예약을 해둔 곳은 루돌프 호스텔이었지만, 체크인은 산타 클로스 호텔에서 해야 했다.

어딘지 모르게 상하관계가 느껴지는 이름들이었다.

피곤한 상태였기에 그런 '삐딱한' 생각이 들었나 싶었다.


호텔까지는 택시를 탔다.

그 비싸다는 핀란드 택시는, 대략 2km를 달리고 만 원 정도의 요금을 청구했다.

거기에는 불평할 맘이 없었다.

하지만 산타 클로스 호텔에서 열쇠를 받아들고 난 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호텔 문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신호등 하나만 지나면 나온다"는 루돌프 호스텔을 향해

눈보라 속에서 20분 동안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앞뒤로 매고 걸어가려니

나이 서른을 앞두고 산타마을을 찾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으며 곱씹어 생각했다.


정신없이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은 여전히 밤이었다.


오전 10시가 지났음에도 하늘은 밝아지질 않았다.

북극의 영향을 받는 북극권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답게

겨울 내내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북극권. 한대와 온대를 가르는 경계선이자

하지에는 백야(해가 지지 않는 밤)가

동지에는 극야(해가 뜨지 않는 낮)의 명암이 엇갈리는 경계선.

지구상의 절대다수에게 낯선 곳이고 그래서 신비로운 땅.

나는 그곳에서 여름의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주아주아주 한가롭고 고요한 마을에서.

새벽 3시와 낮 3시를 구분할 수 없던 하늘과

에메랄드 빛깔로 떨어지던 폭포.

동네 사람들이 '바다'라 부르던 넓고 맑은 호수.


로바니에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스웨덴 아비스코라는 곳의 풍경들.

그런 곳과 비교를 하자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내 주위가 많이 번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도착했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타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마을로 향하는 버스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버스는 고요했다.

산타마을은, 예상보다 아담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눈사람 세 개일 정도였으니까.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세상 어느 크리스마스보다 흥겨운 곳이 산타마을의 크리스마스일 것이라 믿었던 내 예상은

얼음 미끄럼틀을 타고 저 멀리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서 난 산타마을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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