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손목시계를 쓰는 사람


지난 브런치로부터 6년이 흘렀고 주제로 무엇을 써볼까 잠깐 고민했었다. 나도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듯 처음 글을 쓸 때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정했다. 내가 그동안 써온 물건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중에 내가 죽거든 그냥 유품만 달랑 남는 것 보다는 토픽 한 토막이라도 있으면 조금 더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한다.


어릴 때에는 손목시계를 자주 차곤 했다. 핸드폰이 귀하던 시절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약속 시간을 지키자는 목적으로 손목시계를 많이 사주곤 했는데, 나의 경우 카시오 데이터뱅크 시계를 학창시절 오래 썼다. 정확한 모델명은 지금 기억이 안나지만 손목에 햇빛을 가려서 시계 줄 모양으로만 살이 하얗게 남을 정도로 잘 썼던 기억이 남는다. 핸드폰이 보급된 이후에는 아무래도 ‘굳이 시계를 차야하나?’라는 생각에 시계를 등한시 하게 되었지만, 취직한 이후에는 시계가 다시 필요한 순간이 오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서 보는 상황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앞에 두고 딴 짓을 하는 것같은 나만의 죄책감이 들었다.


처음의 선택은 스와치 once again이었다. 모르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근본’을 찾으면 된다. 저렴하고 가벼운 시계라는 점 보다는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간결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험하게 일하면서 쓰기엔 제격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가끔 어딘가에 풀어두었다가 다시 찾을 때까지 ‘비싼 시계를 잃어버렸다’라는 불안감이 없는 것이 정말 부담없이 편했다. 하지만 너무 저렴했던 가격탓일까 내가 너무 험하게 쓴 탓일까, 시계 내부에서 초침이 떨어져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현상이 벌어졌다. 고치기엔 시간과 돈을 들이기엔 아까워서 이참에 다음 시계를 찾기로 했다. 그 사이에 나도 나이를 먹고 예전보다는 험한 일은 덜 하게 되었으며, 정장을 입을 일도 늘어나고 어른들을 만나야 하는 자리가 생겨서 다시 플라스틱 시계를 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제 돈 주고 사서 현재까지 3년정도 잘 정착한 것이 카시오 G-Shock GMW B5000D-1, 흔히 ‘풀메탈’이라고 불리는 시계이다. 메탈 밴드 시계로 너무 애들이 차는 장난감 플라스틱 시계같은 느낌이 없어서 좋았고, 실제로 보지도 않을 어지러운 바늘들이 즐비한 어른 시계에 비해서는 전자시계의 구성이 생각보다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다. 정장에도 어울리고 캐쥬얼에도 어울린다. 내 능력에서 시계에 과투자했다는 느낌이 없어서 좋다. 장단점으로는 태양광 충전 방식이 있는데, 일상적으로 차고 다니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벗어두고 다니면 아차 싶을 때 방전이 되곤 한다. 명품이자 장식으로 더 시계에 비싼 값을 투자할 생각은 당분간 없다. 물론 내가 세상 모든 시계를 다 써보고 준비한 것도 아니고 더 저렴하고 예쁜 시계는 있을 수 있다. 근데 나는 아마추어 인간이고 모든 것에 소모할 시간과 정신이 없으니 당분간은 여기에 정착하려고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시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