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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Sep 01. 2015

어떤 질문

아니 근데 진짜 이유가 뭐예요?

왜?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일단 이 '왜'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일의 배경을 살피고 과정을 파악하고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흔히 why를 다섯 번 물으면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술래잡기는 그래서 강한 스토리를 부여한다. 비폭력을 외치며 물레질을 하던 마하트마 간디부터 파산한 집을 위해 랩머니를 버는 Dok2의 '왜'는 대중을 감화시킨다.


문제는 왜가  불분명할 때 생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이 생각하는 그것과 스스로가 다를 때 미묘한 노이즈가 발생한다. 말 언저리를 몇 번 돌기가 지루할 쯤 진짜 궁금증을 던진다. 예를 들면 "아니 근데 진짜 헤어진 이유가 뭐야?" "그래서 그만 이유가 뭐예요?" 원하는 답이 있건 없건 '왜'라는 철저한 검증과정에서 본인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명확한 이유가 없어도 답을 짜내야 하는 상황은 괴롭다. 


1년 전, 나는 퇴사했다. 근무조건, 조직문화에 아쉬운 점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라 딱 한 가지 이유나 동기를 대기가 어렵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결정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다만 어떤 조직에서 제 발로 걸어나온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정신적 대미지가 제법 컸다. 자유시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동네 후배가 알려준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올랐다. 2주 후 난생 처음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40일간의 여정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많은 질문을 받았다. 특히 "순례길 어땠어? 좋았어?"라는 질문 이 많았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좋았다'로 함축하기엔 수많은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관심 있는 상대방과는 5일 차에 만난 구성애 선생님과 저녁식사, 교토대학원생 야스오와 인터뷰 등 에피소드를 나눴지만 정반대는 간단했다. "응, 좋았어."


산티아고 이야기와 별개로 나는 다시 구직시장에 뛰어들었다. 면접관, 소개팅녀 등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왜 그만두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산티아고 후기를 딱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듯 이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말이 길어지기 일쑤였고 결국 정형화된 답을 찾았다. "다른 것 해보고 싶어서요." "근무패턴이 불규칙해 애로사항이 있어서요." 혹은 하하 웃으며 얼버무렸다. 퇴사를 한 나에겐 '왜 그만두었냐'는 타인의 물음표와 비슷한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물음표가 꼬리표로 변하는 몇 번의 경험으로 'why'가 꽤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크 습성이 타인의 상처를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혼한 사람에게 이혼사유를 묻는 것과 같은 질문 말이다. 특히 한국처럼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분위기에서 내 진심은 중요치 않다. '너한테도 문제가 있으니 헤어진 거 아니야?'라는 의도가 아니라 한들 대답은 피곤하다. 그 후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조심스럽게 왜를 던지거나 그냥 참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종종 상대방이 왜를 풀어놓는 경우가 있었다.  


 "저 같으면 그냥 몇 년 버티다가 이직할 것 같은데 아깝네요." 취업스터디에서 본 초면의 남자(새 X)가 대답했다. 연봉은 얼마였는지 퇴직 사유는 뭐였는지 훅훅 들어오는 질문에 차분히 대답했다. "뭐 각자의 인생이 있듯이 개인의 선택이죠. 하하"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페이스는 왜 그렇게 비대칭인지, 치아는 왜 밖을 갈구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연의 선택과 창조주의 뜻을 알 수 없기에. 알고 보니 고등학교 후배인 그와 스터디룸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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