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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Aug 30. 2015

프리다 칼로전을 보고

애증과 치열함 사이에서

프리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된 건 MC스나이퍼의 곡이었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의 미술혼과 불굴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가사였다. 숱이 그득한 일자 눈썹과 긴 목의 강렬했던 초상화가 떠올랐다.

지인이 프리다 칼로전에 가보자고 연락이 왔다. 일산에서 올림픽 공원까지 두 시간이 넘는 만만치 않은 거리였으나 보고 싶었다. 멕시코 박물관에서 어렵게 허락받았다는 홍보성 기사도 한 몫 했다.  


비가 방울씩 떨어지는 오전 11시 15분 소마미술관에 도착했다. 우산을 맡기고 프리다를 볼 준비를 했다. 남편 디에고와의 관계, 공산당 관련 행동 등 그녀의 일생을 그린 연표가 눈에 들어왔다. 글씨가 많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도 교통사고와 사랑 (혹은 애증)이 그녀를 지탱한 원동력이라 짐작했다. 드로잉 스케치, 작은 그림 그리고 꽤 익숙한 자화상을 하나씩 감상했다.


'애잔함'. 전시회를 보고 난 핵심 키워드랄까. 교통사고로 척추에 철심을 박고 침대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배경지식도 무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평생 디에고의 사랑을 갈망하고, 침대에서 벗어난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갈구했던 그녀의 붓질은 처절했고 그래서 슬펐다. 흔히 결핍이 예술가를 만든다는데 프리다가 감당하고 해야 할 것이 너무나 커 보였다. 자신을 '대지의 어머니'처럼 그리거나, 유난히 많은 자화상도  '자기애'로 삶을 그려가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아쉽게 생각보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적다. 대신 디에고와 타 작가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토요일 오전에도 아이들 관람객이 많아서 놀랐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무엇을 느끼고 고민할지 다소 어렵진 않을지 궁금했다. 한편 디에고나 피카소의 극찬이 없었다면 프리다가 지금처럼 인정받았을지, 조금 이상한 질문을 하며 전시회를 나왔다.


1943년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 (프리다 칼로)


1949년 '우주와 대지와 나와 디에고와 세뇨르 홀로틀의 사랑의 포옹'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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