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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Aug 29. 2015

검은 습기

만남과 헤어짐 사이를 붙잡으려는 72시간의 기다림을 나는 모른다. 


네이비 블레이저 소매로 습기가 스몄다. 간밤 소나기로 젖은 땅에 해가 쏘이자 습한 기운이 올랐다. 갈색 로퍼 바닥 고무창이 쩍쩍 보도블록에 붙었다. 광역버스와 지하철을 고민하다 치미는 화기에 버스 계단에 올랐다. 알랭 드 보통 책과 노트북은 왜 챙겼을까. 어차피 멀미 때문에 보지도 못 할 지적 욕심을 옆 좌석에 놓았다.


뉴스 피드에 뜬 소식에 순간 망설였다. 직접 가야 할지 아니면 메시지를 보내고 계좌이체를 할지 고민했다. 아니면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에 놓인 상대를 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 넥타이를 챙겨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를 붙잡으려는 72시간의 기다림을 나는 모른다. 


오르막길 초입 간판은 단출했다. 족히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고가다리가 보였다. 회백색 콘크리트 기둥과 건물을 둘러싼 초록색 잎사귀가 이질적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검은색 상복과 복도 옆 분홍색 조화들이 어우러졌다. 낯익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그 곳에 그녀가 있었다. 


양 볼은 빨갛고 눈은 더 붉었다.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검은색 타이 매듭만 만지다 분향소로 들어갔다. 두 번 반 절을 마치고 상주와 마주했다. 맞절을 하며 일행 하나가 울컥하자 맞은 편 중간에 선 그녀가 눈물을 울컥 쏟았다. 붉은 향 흩어진 연기의 메케함에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릴까 입술을 깨물었다. 반절 후 그녀의 어머니가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곳은 각자 자기 일로 분주했다. 


몰려드는 조문객에 그녀는 바빴다. 경황이 없어도 허둥대진 않았다. 상에 앉자 꿀떡과 편육이 빠르게 나왔다. 모호한 허기에 식혜를 종이컵에 따랐다. 분향소에는 신도로 보이는 일행이 불경을 외웠다. 경쾌하면서 리듬감 있는 목탁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취기 가득한 어르신은 소주잔을 부딪쳤고 부엌 안 상조 도우미들이 연신 육개장을 퍼냈다. 관계자는 3단 카트에 제사용 과일과 음식을 날랐고 청소부는 입구 앞 재떨이를 비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곳은 각자 자기 일로 분주했다. 


마중 나온 그녀가 일행 옆에 섰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에 다시 북받친 감정이 방울져 떨어졌다. 힘내라는 말이 싫어 어깨를 잡았다. 혹시 탈수로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얼마큼 쏟아내야 그 감정이 잔잔해질까. 일행을 따라 입구로 나섰다. 메케한 담배 연기 만큼 가득 찬 습기에 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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