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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Sep 28. 2015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무적자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무적자, 적이 없단 뜻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2005년 지원했던 대학에 전부 떨어지고 첫 무적자가 되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그 위치는 꽤나 어중간했다. 너는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묻는 질문에 회색인간이 되었던 소설 주인공이 된  듯했다. 집과 서울역 근방 재수학원을 오가며 소속을 그리워했다. 강북 종로학원 1반 누구가 아닌, 어떤 대학 어느 과의 몇 학번이라는 그네들의 자기소개처럼 말이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반 친구 몇 명과 고기를 굽고 수 노래방을 갔다. 하루 종일 켜 놓아도 30% 넘게 남은 휴대폰 배터리가 참 그랬었다.


뒷문을 닫고 들어갔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예비 삼수생으로 학원 등록까지 마친 새벽 두시, 추가합격전화벨이 울렸다. 덕분에 대학생이 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동아리 오디션, 동네 친구들과 다시 만나며 삶의 외연이 넓어졌다. 그동안 참았던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이런 저런 활동들로 터트렸다. 단체가 주는 소속감은 세상과 단절된 상황에 대한 보상욕구와 같았다. 어디를 가도 내 일인 것처럼 리더를 맡고 정을 붙였다. 사람이 그리웠고 그게 좋았다. 더 이상 무적자가 아닌 어디의 누구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MBC 추석특집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보면서  '무적자'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학생, 모델, 연예인, 예술가 등 한국에서 각각의 '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생면부지 남자 다섯이 그 먼 곳에서 히치하이킹과 노숙을 하는 이유는, 지금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 속, 미래의 불안함과 현재의 자유로움이 미묘하게 공존하는 상태는 여행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비록 내 문화권에서 쓸모없을지라도, 여기 다른 나라에서 '지금의 나'를 확인하고 존재가치를 알리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적 변화를 겪었을 때 여권을 챙겨 떠난다. 어디든지.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는 그런 맥락이었다. 어떤 조직에서 스스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혼란스러웠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무적자라는 말이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어떡해야 할까. 어제까지 걸어왔던 길이 아닌 것은 확실히 알겠는데 앞으로 길은 어떻게 찾을지 막막했다. 일단 무언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산티아고를 택했다. 노란색 화살표만 보고 걸으면 된다는 지인의 말에 '일단 고'를 외쳤다. 그 길을 걸어야지만 내 길이 보일 것 같았다. 정확히 2주일 뒤 13kg 배낭을 짊어지고 파리 CDG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걸음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난 나는 여전히 무적자다. 신조어로는 '돌아온 취업 준비생' 혹은 '백수'라는 지칭도 가능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방향을 잡고 나름 단단해졌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조언도 구하는 유연함도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참치회를 사고, 2년 안에 자립하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잉여들의 히치하이커들이 쾰른 성당 방문과 융프라우 캠핑으로 위시리스트를 채워가듯, 지금의 나도 위시리스트를 채우는 중이다. 다음 화가 매우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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