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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Oct 04. 2015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겨우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다. 하얀색 옷에 방독면을 쓴 그들은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한 사람이 걸레 같은 걸로 바닥을 계속 문지른다. 넓게 퍼진 갈색 얼룩이 조금씩 지워진다. 키 큰 사람은 벽지를 뜯어내고, 그 뒷사람이 분사기로 약품 같은 걸 뿌려댄다. 대청소를 하는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즐거움은 없어 보인다. 마치 원래부터 아무도 살지 않던 집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려는  그때 무언가 발에 탁 걸렸다.


뒤덮인 하얀 천 아래 길쭉한 막대기 같은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근육은 말라붙고 뼈마디만 남은 정강이 뼈다. 사람의 다리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다. 가까이 가자 고약한 냄새가 난다. 말로 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천 위쪽을 보니 머리카락이 보인다. 옥수수 수염처럼 푸석한 그것은 건조하고 거의 끊어질 듯하다. 왼손으로 코를 막고 조금씩 하얀 천을 걷어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전우회 로고가 새겨진 금 목걸이 맨 시체, 그건 바로 나였다. 


텔레비전을 틀고 상을 차린 기억이 났다. 그날도 별다를 바 없이 김치와 간장 그리고 흰 쌀밥이 저녁상이었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시큰거리더니 그 날은 좀 더 심했다. 원래부터 약한 심장은 베트남전에 참가한 이후 더 나빠졌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 내외는 5년 전부터 연락이 끊겼다. 그걸 항상 안쓰럽게 여긴 할멈은 죽기 전까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서 온전히 혼자가 됐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노인복지회관에 가면 항상 자식 내외와 손주 자랑을 했다. 외로울수록 즐거운 척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정신을 잃었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누워있는 나를 보자 모든 게 이해가 됐다. 바닥에 갈색 얼룩은 죽은 뒤 내가 흘린 피였고, 그 고약한 냄새는 살이 썩는 내였다. 벽지에 밴 시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벽지를 뜯어내고,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그들은 시체 처리 전문 청소업체 직원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때마침 텔레비전 뉴스가 흘러나온다. “노인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2시 경기도 일산에 살던 80대 노인 차 모씨가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차 씨는 숨진 지 2주가 지나서야 이웃주민의 신고로 ……” 전쟁군인,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내 80 인생은 그렇게 기자의 한마디 멘트로 요약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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