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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Nov 25. 2015

연어 시대

연어는 귀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간 뷔페의 첫 접시는 꼭 연어가 있었다. 얇게 썬 양파와 사워크림을 얹어 먹는 선홍색 살코기의 부드러움이란. 머리가 크며 입도 까다로워졌다. 냉동 혹은 자연산인지를 따지고 두툼할수록 좋은 뷔페라 여겼다. 쉽게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에 한 번은 열 접시를 비워 배탈이 났다. 끓는 배를 쓸어내리며 돈 값했다며 웃었다. 


연어가 흔해졌다. 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에 연어 전문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한리필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4잔 값이면 생연어를 양껏 먹을 수 있다. 가지런한 연어살 풍경이 인스타그램을 장식하면서 경쟁은 시작됐다. ‘존맛’, ‘1인 1 접시’, ‘불금에는 연어’ 같은 헤시태그(#)가 난무했다. 윤기 넘치는 살코기가 빚는 일련의 부채꼴은 아름답다. 그야말로 연어 시대다.


‘해방감’과 ‘정복감’. 무한리필 연어 전문점을 보면 두 단어가 떠오른다. 이자카야의 3만 원 넘는 연어 사시미는 이제 안녕이다. 얼마나 먹든 남기든 섭취의 자유는 온전히 자기만의 몫이다. 1cm가 넘는 살덩이를 여러 점 집어 입에 넣을 때 우리는 해방감을 느낀다. 이는 곧 정복욕을 불러일으킨다. 전반전이 지날수록 본전을 향한 도전정신은 점점 강해진다. '1인당 1.5배', '1인당 2 접시' 같은 다소 가학적인 캐치프레이즈는 맘껏 먹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물리는 살점을  우겨넣으며 그렇게 연어를 정복한다.


원시사냥 시대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 같았다. 무엇을 씹고 목구멍으로 넘기는 과정은, 현재를 버티고 내일을 비축하는 힘이었다.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가지 않아도 배불리 먹는 것은 가까운 현재의 숙원이다. "밥은  먹었냐"는 할머니의 질문은 전쟁통에 배불리 먹지 못한 근현대사를 내포한다. 생존을 위한 원시인들의 싸움은 이제 '먹는 대상을 위한  싸움'으로 바뀌었다. 그 대상이 닭갈비, 돼지고기, 초밥을 거쳐 연어로 이어졌다.


싸우지 않는 자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무한리필로 대변되는 그 많은 것들이 그렇다. 연어 시대의 다음 타자는 누구인가? 물리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다니며 우리는 오늘도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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