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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Nov 20. 2015

다른 나라에서

2007년 7월 오사카의 여름은 더웠다. 저녁을 해결하려고 들어간 국숫집도 더웠다. 친구와 내일 일정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한국 대학생?”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발음이었다. 그는 재일동포 4세로 방학이면 이곳에 놀러 오는 한국 대학생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가려는 우리를 아저씨가 불렀다. 갓 삶은 풋콩과 에비스 맥주 4캔이 담긴 봉지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느끼지 못한 순수한 ‘정’이 아저씨의 얼굴에 묻어났다. 


한국인이 반드시 한국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 부모님의 이민 등 다양한 이유로 다른 곳에서 터를 잡고 산다. ‘동포’란 이름으로 불리며 비록 몸은 타국에 있지만 마음속에 한국이란 끈을 잡고 산다. 재미 혹은 재일동포 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타의적으로 한국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해외입양이 그렇다. 찢어진 눈이라는 ‘chink’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들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그들을 해외로 보낸 대한민국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반전은 일어난다. 프랑스 대통령이 올랑드로 선출되면서 IT 장관으로 임명된 플뢰르 팰르랭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등장하자 뉴스와 신문은 ‘한국인’ 최초 프랑스 장관이 탄생됐다고 말했다. 플뢰르 팰르랭 옆에는 한국 이름 김종숙도 병기됐다. 이미 프랑스인인 그녀가 친부모를 찾는다고 한국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은연중에 뿌리 찾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한 그녀를 칭찬하고 가엾게 여긴다.


오사카의 아저씨는 조용했다.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그때 가게에는 아저씨와 우리뿐이었다.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싫어 숨 쉬는 것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것 같았다. 지금도 수많은 동포들이 자신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한국은 생물학적 정체성을 규정한 지울 수 없는 꼬리표다. 오늘도 우리가 유명해진 ‘한국’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사이, 다른 나라에 있는 진짜 한국인들은 외롭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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