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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Jan 28. 2016

스페인의 여름을 걷다

제 1장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있을까

2유로를 내고 버스에 올랐다. Vermars Francois Mauriac로가는 플랫폼이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기사에게 행선지를 보여줬다. 끄덕이는 고개를 다시 확인하고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새빨간 13kg 배낭을 다리 사이에 끼고 수첩을 꺼냈다.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있을까?’ 거칠게 적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3일 뒤 그때의 지금이 진짜 ‘지금’이 되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버스를 탔다. 테제베 티켓 발급 때문에 한 시간을 넘게 헤맨 탓일까? 긴장감에 짓눌렸던 어깨 통증이 느껴졌다. 30분 후 정류장에 도착했다. 17시간을 날아와 처음 본 다른 세상의 하늘이 너무도 새파랬다.




초인종을 누르자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옆에는 나이 든 시츄가 짖었다. 에어비엔비에서 본 프로필 사진 그대로였다. 2층 숙소는 생각보다 넓고 침대도 여러 개였다. 채광이 잘 드는 침대 위에 모자와 옷가지를 놓았다. 미국 출신인 그녀는 이혼 후 지금의 남편과 재혼해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았다. 거실로 내려가는 벽면에 남자아이 사진이 보였는데 아들이었다. 스무 살인 알렉산더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직장을 얻었다. 최악의 취업난으로 프랑스를 떠나는 젊은이가 많다며 아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 했다.


내가 묵었던 Vermars는 2천명이 사는 작은 마을로 대대로 사는 가구가 많은 곳이다. 근처에는 남편의 일가 친족이 사는데 그녀의 시어머니는 평생 바다를 못 봤다고 한다. 옆에서 짖어대는 라퓌(강아지)를쓰다듬는 그녀는 참 편안했다. 젊었을 적 일본에서 일했고, 영어를 잘 안 쓰는 프랑스인 때문에 고생했던 이야기가 오갔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자 들어봤다고 했다. 전체 여정과 왜 걷는지 물었다. 과거를 돌아보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겠다는 의미를 전달하려 했으나, 오랜만에 쓰는 영어라 버벅댔다. 충분히 알겠다는 표정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친동생 이야기를 해줬다. 최근에 북한을 다녀왔다는 그의 얼굴은 그을렸고 거칠었다.


그러다 기차표 이야기가 나왔다. 목적지 Bayone 행 테제베가 파업 때문에 미운행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기 시작한 5분 뒤, 파업이 확실해졌다. 아찔했다. 미뤄지는 일정은 둘째치고 당장 묵을 곳이 없었다. 당황한 내 표정을 알아챈 그녀가 이런 일은 다반사라며 안심시켰다. Bayon 행 기차 대신 다른 곳에 서는 차편을 확인한 후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SCNF 관계자인 지인은 목적지로 가는 또 다른 기차를 알려줬고 그녀는 수화기를 어깨 사이에 끼고 쪽지에 적어갔다. 경황이 없는 나를 보며 또 씽긋 웃고 하나씩 설명을 시작했다. 까무잡잡한 한국청년을 미국 출신 아주머니가 프랑스 시골마을 파란 지붕 집안에서 돕고 있었다.


마을 구경도 하고 바람도 쏘일 겸 밖을 나섰다. 내 키보다 큰 보라색 라벤다를 흔들자 섬유 유연제에서 맡던 그 냄새가 넓게 퍼졌다. 진짜 라벤다라니 생경했다. 마을은 작았고 근처 슈퍼마켓에 들렀다. 바게트를 매장에서 굽고 각종 맥주를 파는 전형적인 마켓이었다. “How much?”라는 물음에 대답은 불어였다. 작은 마을이라 그럴까 아니면 프렌치의 자부심 때문일까? 계산대에 적힌 숫자를 보고 5유로를 건넸다. 요구르트, 사과, 바게트를 한 봉지 들고 방에 들어갔다. 짐을 정리하는 데 라퓌가 꽤 크게 짖어댔다. 체구 좋은 아저씨와 악수를 했다. 공항 Cargo에서 일하는 그는 유쾌했다. 아주머니가 중간 통역사가 되었다.


숙박비를 사전 결재했을 때 저녁 비용은 따로 포함하지 않았다. 이웃 두 분이 더 오고 피자를 사러 갔다. 두 판 사면 한판 공짜라고 따로 돈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고마우신 분. 더치페이가 철저한 서양문화라는 선입견은 여행을 하며 꽤 많이 빗나갔다. 어디를 가나 인간의 ‘정’은 다르지 않다. 직접 만든 벤치에 둘러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오후 8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파랬다. 신기하다고 하니 얼마 전 들렀던 아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며 함께 웃었다. 


아저씨가 갑자기 파리 에펠탑을 보고 싶냐고 물었다. (에펠탑 관광 비용도 따로 받는다고 명기돼 있었다. 분명 그랬었다) 마다할 이유 없이 '위' (불어로 예쓰) 외쳤다. 4인승 푸조에 5명이 타니 자리가 묵직했다. 해는 저물어가는데 펑키 음악을 튼 아저씨가 엉덩이를 흔들었다. 분명 운전 중이었고 앞자리가 흔들거렸다. 이런 순간이 즐거워 같이 리듬을 탔다. 




에펠탑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 기억이 잘 없다. 분명 졸지 않으려 안감힘을 썼는데 역부족이었다. 멋쩍게 웃고 굿나잇 인사를 했다. 하얀 침대보에 몸을 뉘었다. 입대 첫날, 신병훈련소에서 눈을 감기 전 딱딱한 매트리스의 촉감이 떠올랐다. 지금은 푹신한 침대와 빨간 배낭 그리고 머리맡에 다이어리가 있다. 분명 산티아고를 걸으러 온 게 확실했다. 안녕 한국, 안녕 프랑스.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숙소.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다.


헬로 라퓌! (집에 있는 태양이가 생각났다)


여행 첫시작을 너무나 행복하게 해주신 두 분


너무나 유쾌했던 피자 아자씨


분명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어딘가에 있다. 분명히


평소 셀카를 별로 찍지 않음에도 이 사진을 올리는 이유가 있다. 점점 가면 갈수록 산티아고화 하는 내 모습을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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