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오직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해석을 통해서이며, 따라서 만약 그 해석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세계 역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너선 헤이트, 《행복의 가설》, p.56-
내 마음속에 나도 몰랐던 감독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 알게 된 것은 40대 초반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죽고 싶을 만큼 아파서 힘들 때였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많이 움직이면 안 돼, 죽을 수 있어.”“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받으면 안 돼, 겨우 가라앉힌 분노가 터져 올라올 수 있어.”“이건 먹으면 안 돼, 소화가 안 돼서 잠자기 힘들 수 있어.”“TV 뉴스를 보면 안 돼, 드라마도 보면 안 돼, 열 받아 죽을 수 있어.” 매 순간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이나, 감정, 행동까지 친절하게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려주는 그가 고마워서 의지했다. 나는 그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그가 하라는 대로 충실히 따랐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 방송의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라디오에서 몇십 회 이상 시리즈로 진행되던 한의사의 건강 강의 코너가 있었다. 그 강의에 나는 매달렸다. 아침에 세수하고 식탁에 숙연하게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의사의 경혈(經穴) 강의를 듣는 게 삶의 끈이었다.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진정제였다. 일주일 중에 강의가 없는 주말에는 불안했다. 아침에 라디오 강의를 듣고 나면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의례(儀禮)가 되었다. 이렇게 내 마음의 감독관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내 삶의 영역은 점점 좁아졌다. 나는 나를 힘들게 만든 가해자들과 세상과 당당히 싸우지도 못했다. 오히려 무너져 내린 내 몸과 마음에만 안쓰럽게 매달리고 있었다.
“소화가 안 되면 어떻게 하지?”“오늘 밤은 잘 수 있을까?”“자다가 숨이 막히면 어떻게 하지?”“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나는 저녁이 되면 걱정의 지껄임에 녹초가 되곤 했다. 내 안의 감독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감독관은 “수면제는 먹지 마라, 먹기 시작하면 마지막이다.”“대학교 한방병원에 가라, 침을 맡고 한약을 먹고 버텨라.”라고 했다. 그래서 한의학 대학병원 내과에 갔다. 침을 맞았다. 한약도 처방받았다. 나는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가 내 증상을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가 겪고 있는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다.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럴 때 의사로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증상은 대개 어떤 상황에서 나타난다. 이런 처방을 얼마간 해봅시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 말만 들어도 내 가슴은 편안할 것만 같았다. 안타깝게도 진료 시간도 짧았다. 내 얘기는 그냥 대충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심각하게 아프다고 하소연하는데 의사는 종이에 처방전을 적고 있었다. 지금도 ‘내과와 신경정신과가 아픈 사람인 나를 중심에 놓고 서로 협진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믿을 곳이 없었다. 내 마음속의 감독관은 움직임을 더 줄이고 더 조심하라는 훈계만 늘어놓았다. 감독관이 하라는 대로 의사를 찾았지만, 의사는 내가 원하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이렇게 심각한 내 마음의 상태를 아내에게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었다. “당신은 집안의 장남이고 장손이다, 책임이 무겁다.”“집안의 기둥이다.” “든든한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 내 마음속의 감독관이 나에게 하는 말에 내 가슴은 조여들었다. 세상의 무게를 내 가슴에 다 얹고 있는 것 같았다. 갑갑한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의 감독관은 곧바로 “내가 죽으면 아내와 애들은 어떻게 살아?”“아내가 식당 일이나, 가사 도우미, 노래방 도우미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은 있는가?”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죽을 준비를 하나씩 해나갔다. 내 마음속의 감독관이 나에게 주입한 역할에 대한 짐이 너무 무거웠다. 이제는 내려놓고 싶었다. 내가 가입한 보험과 퇴직금도 계산했다. 내가 없을 때 아내가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지? 애들이 대학 졸업까지 다닐 돈이 되는지? 확인했다. 내가 2년 전에 가입한 종신보험이 있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았다. 파일에 보험증서와 퇴직금 계산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새벽 2시쯤에 일어나 옆에 곤히 잠자고 있는 아내와 애들을 바라보았다. 나와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는 죽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 내 마음의 감독관이 하는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을 죽이고 있던 마음의 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죽기 전에 내 마음속에 무엇이 쌓여있는지 알고 싶다.’‘이왕 죽는 마당에 속이나 한 번 시원하게 뚫린 느낌을 안고 죽고 싶다.’‘내가 이 세상에 와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가는 것도 억울한데, 내가 이렇게 망가져서 가는 게 더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나는 죽기 전에 내 속마음을 원(怨) 없이 털어놓기로 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더 이상 애쓸 필요도 없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냥 내 마음속을 활짝 열어젖혔다. 내 안에 갇혀 있던 것들이 서로 먼저 나오려고 아우성이었다.
오래 묵혀두어서 냄새가 나는 감정들이 안개처럼 빠져나갔다. 억울함, 원한, 책임감, 분노, 적개심, 두려움, 무서움의 감정 에너지였다. 억울함의 감정은 내가 부당하게 당했다는 생각 다발을 같이 끌고 올라와서 빠져나갔다. 적개심의 감정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 다발을 끌고 빠져나갔다. 내 안의 감정 에너지가 움직일 때마다 내 몸 구석구석이 같이 움직였다. 온몸의 근육이 뻣뻣했다가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빴다가 느려지고, 조이고 뒤틀렸다가 다시 펴졌다. 눈물샘도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내 안에 감정과 생각이 빠져나간 자리에 칡넝쿨처럼 엉겨있는 뿌리가 뻗어있었다. 갈망 기대 욕구의 뿌리였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무시당하지 않고 싶은 욕구, 상대방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갈망, 상대방을 앞서고 싶은 갈망,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싶고, 싫은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고 싶은 욕구,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 간섭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의 뿌리들이었다. 죽기 전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 뿌리들을 하나씩 뽑아내었다. 어떤 뿌리는 뽑아내기 아쉽기도 했다.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부터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조금씩 생겼다. 어느 순간 내 마음속의 감독관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그는 이미 힘이 빠지고 있었다. 내 욕구와 갈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같이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이 내 안의 감독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여전히 기대와 욕구의 뿌리가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 뿌리를 발견할 때마다 ‘아하~, 나에게 이런 뿌리가 있었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읊어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뽑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