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수용체 수준에서 부호화되거나 저장된다는 말은 기억 과정이 감정에 따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조종된다는 것이다.…(중략). 우리는 감정과 기억이 매우 밀접하게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오래된 어릴 적 기억은 대부분 지극히 감정이 실린 기억들이다.
-《감정의 분자 Molecules of Emotion》, pp.196-197. 캔더스. B. 퍼트-
나는 내 목구멍의 근육이 민감하다고 느낀다. 내가 어떤 것을 눈으로 보고 나서 목구멍으로 넘길 때는 더 엄격한 검열 반응이 일어난다. ‘이건 넘길 수 없다. 넘기면 안 돼’라는 무의식적·자동적인 차단 반응이다. 넘기는 순간 목구멍 속 근육이 꽉 조여든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무리 빨리 꿀꺽 삼키려고 해도 목구멍 앞에서 넘어가지 못한다. 나는 평소에도 무심결에 목을 ‘흐흠’ 소리를 내면서 헛기침을 하곤 한다. 목에 뭔가 걸려 있어 불쾌한 느낌이 들 때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속이 답답하다고 느낄 때도 헛기침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속마음 털어놓기를 하면서 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속마음 털어놓기 전에 비해 목에 대한 민감 반응이 많이 나아졌다.
나는 내 목에 대한 트라우마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한다. 내가 5살 무렵이었다. 집 마당에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을 잡고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점점 새파랗게 질려 컥컥거리고 있었다. 목구멍에 동전이 걸려 뱉지도 넘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동전을 가지고 놀다가 입에 넣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장사하시러 일찍 시장에 나가시고 안 계셨다. 어머니는 놀라서 내 등을 두드리고 입을 벌려 목구멍에 걸린 것을 빼내려고 하셨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숨이 막혀 기절 상태가 되었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답답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감이 몰려왔다. 목을 잡고 버둥거렸다. 옆집에 사시는 이모부님이 달려와서 한 손으로 내 배를 잡고 나를 거꾸로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 목 뒤쪽을 탁탁 여러 번을 쳐서 동전을 빼내어 주셨다. 숨이 막혀 죽다가 살아난 경험이다.
나는 지금도 알약 먹는 것에 약간의 부담을 느낀다. 씹어서 먹어도 봤는데 엄청 쓴맛 때문에 포기했다. 단단한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넘기면 목의 근육이 갑자기 꽉 조이는 것을 느낀다. 가끔은 아침·저녁으로 비타민제 알약을 먹는데 물 반 컵을 먹어야 한다. 목에 긴장이 덜 하면 그냥 쉽게 넘어간다. 약을 먹기 전에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속마음 털어놓기 1분 명상을 자주 한다. 이제는 ‘내 목의 근육이 또 긴장하고 있구나’‘꽉 조이고 있구나’‘무슨 생각이 목의 근육을 긴장시키는가?’‘어떤 기억이 목의 근육을 긴장시키는가?’‘어떤 감정이 목의 근육을 움츠러들게 하는가?’라고 나에게 물어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는 다시 시도한다. 두세 번 시도하다가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면 심호흡 몇 번 하고 난 뒤에 천천히 시도한다. 그러면 넘어간다.
나는 건강검진에서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수면 내시경 검사를 한다. 마취 없이 그냥 내시경 검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는 마취한 상태에서도 목에 관을 넣을 때 처음에는 목젖 부근의 근육이 꽉 조이는 것을 느낀다. 목의 근육이 조이는 느낌이 들면 숨을 쉴 수 없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훅 따라 올라온다. 그러다가 마취가 완전히 되면 어느새 검사는 끝난다. 나는 수면 내시경이 아니면 검사를 받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올라온다. 내 목의 민감 반응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내 몸과 마음에 어린 시절 목 트라우마로 인한 ‘생존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 집을 오고 가면서 차멀미를 많이 했다. 목구멍을 통해 토해낼 때 불쾌감이 반복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끌고 나왔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일어났다. 멀미와 어지러움과 불쾌감과 답답함과 공포감이 한데 섞여 다시 기억에 저장되었다. 20살 이후에는 멀미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멀미에 대한 면역이 생겨서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나 잘난 맛에 사느라 나를 돌아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럭저럭 잘 사는 줄 알았다. 다시 20년이 지났다. 40대 초반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기억을 다시 만났다. 내 머릿속에 저장만 하고 한 번도 내보내지 않았던 기억이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숨이 가빠진다. 호흡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몸의 반응이다. 나는 이런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숨이 가쁘다는 느낌이 올라오는 순간 과거의 목구멍 트라우마 기억이 되살아났다. 일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거 기억에 붙어있던 감정에 불을 붙였다. 답답하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같이 따라 올라왔다. 온몸이 긴장되고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가슴은 조여들었다. 진땀이 나고 핑하고 도는 느낌이 올라왔다. 더 민감하게 더 자주 이런 증상을 겪었다. 숨 쉬는 것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점점 움직이는 것도 조심했다. 그럴수록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행동을 조심할수록 몸과 마음에 긴장은 더 올라갔다. 악순환이었다.
지방에 근무할 때다. 숨쉬기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자극이 있었다. 그로 인해 기차 공포증을 겪었다. 지방 근무지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러 갔다. 수원역 광장에 들어서는 데 시간이 빠듯했다. 급히 뛰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데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한 손에 들고 힘껏 뛰어 승무원의 손을 잡고 겨우 열차에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대로 열차 문 앞 복도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두꺼운 열차 문이 덜커덩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이제 갇혔구나. 숨을 더 쉴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올라왔다. 내가 숨을 헐떡이면서 양손으로 가슴을 잡고 죽을 것 같다고 승무원에게 말했다. 열차를 세워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승무원이 당황해서 물도 가져오고, 담배에 불을 붙여 내 입에 물리기도 했다. 다른 승객들이 보고 있는데도 창피한 줄도 몰랐다. 겨우 진정이 되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5시간을 타도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 역인 천안역에서 내렸다. 천안역 광장에서 3시간 정도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기차 공포증을 경험한 것이다. 그 뒤로도 기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5시간 동안은 가슴이 졸아들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무실이나 집에 도착하면 온몸의 힘이 다 빠졌다. 기차 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속마음 털어놓기 훈련을 하기 전에는 이런 증상이 왜 일어나는지 몰랐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 그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동전이 목구멍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기억이었다. 내 마음속에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의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속마음 털어놓기는 기억에 묻어있는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다. 감정의 에너지는 몸에 신호를 보내 반응하게 한다.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가 위협받을 때, 감정 에너지는 분출하려고 한다. 이것을 우리 몸은 알고 있다. 내 마음속에 있던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의 에너지가 내 몸에서 숨을 가쁘게 쉬도록 몰고 갔다. 공포감의 에너지는 자신을 알아달라는 몸부림을 친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힘을 쓰지 못할 때까지 주인인 내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는 내 안의 아이에게 ‘얼마나 놀랐을까’라며 다독거리고 꼭 안아 주고 있다. 숨 쉴 때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죽지는 않는다고 안심시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