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내 마음속 공포감의 뿌리를 찾았어요

by 치유 컴패니언

우리는 명백한 것조차 못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생각에 관한 생각》, p.38, 대니얼 카너먼 Dniel Kahneman-


내가 40대 초반, 가족과 여름휴가를 동해안으로 갔을 때다. 나는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설악산 입구의 권금성을 케이블카로 구경하기로 했다. 오전에 케이블카로 권금성을 다녀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10시에 출발하는 케이블카 탑승권을 구매했다. 표를 가지고 나오는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의 시비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케이블카 타고 갈 수 있겠어?’‘가다가 멈추면 꼼짝도 못 하고 갇혀 있을 텐데’‘가다가 숨이 막히는 상황이 오면 내리지도 못할 텐데’. 내가 케이블카에 드러누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항 발작하는 모습도 마음속에 떠올랐다. 도저히 이대로 케이블카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탑승권 판매 창구로 다시 가서 탑승 시간을 오후 1시로 바꾸었다.


가족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단 오후로 탑승 시간을 미루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로 설악산 입구 주변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천천히 다녀오자고 둘러댔다. 다른 가족들처럼 나도 우리 가족과 같이 케이블카를 타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막상 타려니까 온몸에 비상이 걸렸다. 숨이 가빠졌다. 마음속에서는 ‘안전을 위해서 케이블카 타는 것을 포기해라’는 생각이 계속 올라왔다. 그때까지 가족들에게 내 상태를 얘기하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을 지키는 듬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싸움이 점점 심해졌다. ‘가족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받아라, 아니다,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가장으로서 남들처럼 휴가도 다녀오고, 재미있는 것도 경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털어놓지 못하고 강한 척, 괜찮은 척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었다. 이제 케이블카를 타야 했다. 타지 않을 핑곗거리도 없었다. 다시 한번 탑승 시간을 1시에서 2시로 미루었다. 점심 먹고 소화 좀 시키고 타자고 주변을 또 한 번 걸어 다녔다. 2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줄이 점점 줄어들수록 가슴은 뛰고 몸은 어슬어슬하면서 떨렸다. 케이블카 안으로 들어섰다. 휴가철이라 정원을 채워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문이 닫히고 출발하면서 한 번 출렁거렸다. 내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주저앉을 데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바깥 경치가 좋다고 사진을 찍고 즐거운 것 같았다. 나는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어지러웠다. 손에 끈적끈적한 땀이 배었다. 배가 조이고 온몸이 긴장되었다. 사람들 소리도 ‘웅~웅’하면서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흐릿해졌다. 가슴이 조이고 숨이 가빠졌다. 죽을 것 같아 가쁜 숨을 더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올라가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케이블카 문이 열렸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약간 가슴이 시원해졌다. 이제 권금성 입구에 도착했다. 권금성 정상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시원함도 잠시였다. 지금은 권금성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여기서 빨리 내려가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마음속에 올라왔다.


정상까지 가는데 힘들었다. 애들을 앞세우고 아내와 나는 뒤따랐다. 정상에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애들은 좋아서 정상 올라서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데, 나는 오금이 저려서 올라가지 못했다. 밑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5년 전에 왔을 때, 권금성을 내려오는 중간에 찻집에 들러 차도 마시고 메모도 남겨놓고 왔었다. 5년 후에 다시 오겠다고도 적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아내가 들러보자고 해서 들어갔다. 예전의 편안함,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가슴은 계속 쿵쿵거렸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떨렸다. 찻집에서 차도 마시지 않고 나와서 허겁지겁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내려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내 마음속의 아이는 자지러질 만큼 공포감을 느꼈다.


이후로 나는 3년간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가능하면 타지 않았다. 그래서 새집으로 이사할 때도 3층 이하의 집을 구했다. 지하 주차장과 영화관도 들어가지 못했다. 지하철 타는 것도 힘들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안양에서 사당으로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갈 때였다. 두 대의 열차를 타지 않고 그냥 보냈다. 사람이 많이 탔기 때문이다. 열차 안에 사람이 많으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있는데 나만 혼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태령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중에 열차가 천천히 가다가 멈추었다. 순간 내가 굴속에 갇혔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훅~’ 하고 올라왔다. 가슴이 덜컹하면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숨쉬기가 더 힘들었다.


진땀이 났다. 두려움과 불안감 공포감이 밑에서 위로 확 올라왔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여기가 대충 어디쯤일까? 비상문은 어떻게 열지?’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항에 있는 물고기 같았다. 물고기가 산소가 부족할 때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질식할 것 같았다. 가슴은 이미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아팠다. 겨우 사당역에 내리면 힘이 빠졌다.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2호선 열차를 타러 갔다. 사람들이 꽉 차 있는 열차는 모두 보내고 조금 덜 복잡한 열차를 타고 갔다. 그것도 한 정거장도 못 가서 또 내렸다. 어지럽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승강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 뛰는 가슴을 조금 진정시키고 나서 열차를 탔다. 모든 신경이 예민해졌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 돌아보면 그때 나는 쓸데없는 데 온 힘을 버리고 있었다. 내 마음속의 실체가 없는 괴물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올라오는 생각을 통제하려고 했다. 생각과 싸웠다. ‘빠져나갈 수 없다, 갇혔다’는 생각이 올라오면 빠져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온몸의 근육이 뭉쳤다. 재빨리 도망가기 위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고 나면 ‘숨을 쉬지 못해 죽을 같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숨을 더 많이 쉬기 위해 더 가쁘게 숨을 쉬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빠져나오기 위해 쳇바퀴를 더 빨리 돌리는 것과 같았다. 생각의 괴물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은 나를 이겼고 나는 졌다.


이제는 케이블카를 편하게 탈 수 있다. 지하철도 편하게 타고 다닌다. 내 안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생각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의 그림자를 자각하는 순간, 생각의 올가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생각의 그림자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 힘이 매우 센 감정을 데리고 다닌다. 내 마음속에서 생각이 올라오기만 해도 생존에 특화된 감정이 재빨리 움직인다. 내가 이런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 에너지의 힘에 놀라고 만다. 다시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올라온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의 닫힌 회로’가 돌기 시작하면 온몸이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이런 회로를 끊어내야 내가 살 수 있다. 속마음 털어놓기로 생각의 그림자에 연료를 공급하는 감정 에너지를 뽑아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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