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가 있는 그대로 우리 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계를 계속 다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덫에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꽁꽁 포박을 당한 상태다.
- 《마음 감옥》, 앙드레 샤르보니에, p.113-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이었다. 나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면서부터 왼쪽 가슴이 뻐근함을 느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걸어가면서 심상으로 왼쪽 가슴의 느낌을 떠올렸다. 떠올린 심상을 내가 내딛는 발바닥으로 계속 번갈아 밟고 갔다. 뻐근한 느낌이 조금씩 바뀌었다. 뻐근한 느낌은 사라지고 가슴이 약간 답답하다는 느낌이 올라왔다. 지하철 역사를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는데 신경이 쓰였다. 지하철 안에서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심상으로 마음챙김 속마음 털어놓기를 시작했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면서 가슴의 답답한 느낌을 알아차렸다. 묵직하면서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꾹 눌리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가슴을 문지르고 누르는 행동 대신에 저항하지 않았다. 예전의 공황발작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감정이 살짝 얼굴을 내비쳤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읊었다. ‘그래 예전의 그 두려움의 손님이 깜짝 방문을 했구나.’라고. 편안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두려운 감정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려운 감정이 데리고 온 친구도 있었다. 내가 40대 초반일 때 경주에서 근무하던 시기의 기억이었다. 내 마음의 무대에 무섭고 두려웠던 옛 친구들이 올라온 것이다. 예전 같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과 같이 올라온 감정도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손님이었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였다. 충분히 다 털어놓고 가도록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나서 가슴이 답답해 경주역까지 15분 정도 걸었다. 걷고 있는데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내가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붕붕 떠서 다니는 느낌이었다. 내 몸이 휘청거렸고 헛구역질도 났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바로 앞에 있는 약국으로 뛰어 들어갔다. 약사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지도 못하고 가쁘게 숨만 몰아쉬었다. 겨우 ‘내가 지금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약을 좀 달라’고 했다. 약사는 내 상태가 대수롭지도 않은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약사는 내 상태에 대해 더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떤 증상인지 설명도 하지 않고 알약과 음료수를 주면서 먹어보라고 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온몸도 떨렸다. 더 불안했다. 그때 약사가 조금만 더 친절하게 나를 안심시켜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올라왔다. 약국을 나와서 골목길모퉁이에 주저앉았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었다. 30분쯤 앉아있으니까 가슴이 조금씩 쿵쾅거리고 있었지만, 숨쉬기는 조금 편해졌다. 사무실에 와서 자리에 앉아있는데 ‘오늘 밤에 집에서도 그러면 어쩌지?’‘집에 가면 혼자 있는데 어떻게 하지? 병원에 입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두려웠다. 이럴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요즘은 인터넷에 내 상태를 입력해서 검색하면 궁금한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겪는 증상과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안내해주는 글들이 많이 있다.
요즘은 방송이나 SNS에서 전문가들의 설명과 조언을 들을 수 있다. 그런 경험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서로 나눌 수 있다. 그런 정보들을 보면서 내가 겪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럴 수 있는 기술이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증상인지도 모르고 갑자기 다시 경험할 수 있겠다는 불안이 더 두려웠다. 그런 경험을 한 후 사무실이나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두려웠다.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갑자기 치밀어 올랐다.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차는 게 당연한데도 나는 견디지 못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서다. 길거리를 조금만 빨리 걸어도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고 또 천천히 걸었다.
두 번째 기억이 고개를 내밀고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가도 되냐고 노크를 했다. 나는 지금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눈을 감고 속마음 털어놓기 명상을 하는 중이다. 그 기억이 데리고 오는 생각과 감정을 다시 보는 것이 불편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였다. 경주에 있는 대학병원에 달려갔던 기억이다. 오후에 사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차를 돌려 병원으로 갔다. 주차를 대충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접수창구로 갔다. 어느 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내과로 접수를 했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지러웠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올라왔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에게‘가슴이 답답하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호소했다.
의사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몇 군데 진단하고 나서 ‘심장은 그렇게 빨리 뛰지 않는데?’라고 했다.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하게 처방할 게 없다고 했다. 내가 왜 그런지 좀 더 설명이라도 듣기를 바랐는데 의사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인데 이상이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진료실을 나서면서도 불안했다. 한 달 사이에 병원을 두 번 더 갔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심장내과에서 심장박동기를 24시간 부착하고 검사를 했다. 약간의 부정맥 소견이 있지만, 치료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보름 후에는 병원에 입원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 중에 어지럽고 몸에 힘이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무조건 입원시켜달라고 했다.
나는 입원을 했지만, 내 병명이 무엇인지 몰랐다. 무슨 약을 처방했는지, 밤에 자는 중에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이빨이 나갈 정도로 몸이 오그라들었다. 혓바닥이 갈라졌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는 의사의 처방이 달라졌다며 다른 약을 주었다. 이러다 병원에 있다가 무슨 약을 먹는지도 모르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퇴원을 요청했다. 의사의 처방이 일주일 경과를 보고 퇴원해야 한다고 해서 며칠을 더 병원에서 보냈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마음 편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창살 없는 마음의 감옥에 갇힌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고 그 당시 기억이 데리고 온 이미지와 생각,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내 심장이 뛰는 느낌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다.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일에 대한 압박감을 안고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완벽하게 실수하지 않고 해야 가해자들로부터 더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를 지방으로 좌천시킨 가해자들에게 당한 억울함을 풀지를 못해 가슴이 차올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마음속에 아직도 조금 남아있는 억울함의 에너지를 알아차렸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복수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분노의 감정이었다.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와 충분히 한바탕 놀면서 풀 수 있도록 지켜보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40분 정도의 시간에 속마음 털어놓기 명상을 했다. 답답하던 가슴도 편안해졌다. ‘또 내가 마음의 감옥에 혼자 들어갔다가 나왔구나’하고 알아차렸다.
요즘 나는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마감일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있었다. 정해진 분량을 채우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노트북을 켜면 나도 모르게 SNS를 둘러보고 있었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회사 업무, 집안 대소사, 지인들과의 만남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시간의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도 없는데,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해놓고 내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아하, 그랬구나, 맞아, 그렇게 조바심을 냈구나.’‘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그렇네, 예전의 그 친구가 나를 가두려고 했구나.’하고 알아차렸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가면서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나의 욕심이 보였다. 글을 쓰려는 욕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심의 감옥에 잠시 들어갔다 왔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랬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있지, 그럼, 괜찮아.’라고 나를 다독였다. 마음의 감옥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나도 속마음 털어놓기 방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내 마음의 감옥을 보지 못했다. 감옥인지도 모르고 들어가서 나를 내보내 달라고 허우적대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었다. 이제는 몸에서 보내는 신호들이 불편은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는 고마운 친구다.
감옥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감옥 열쇠는 바로 내가 감옥에 갇혔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누구에게 어떤 것을 털어놓아도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상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살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취약하다. 내 상태를 털어놓는다고 내가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해진다. 더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다.